Slavoj Zizek, 2001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에 접근할까?
프로이트가 이르마 주사의 꿈에서 이르마의 입을 보면서 겪는 경험은 라캉이 ‘상징적 기능의 작용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듯 그 공포가 어떤 안정과 같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환상은 현실의 절대적인 보조역할을 한다. 현실을 실질적인 것으로 보게 하는 것을 막는 꿈의 가상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환상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구성요소이다. 현실이 바로 프로이트로 하여금 이르마 목 속의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터무니 없는 상징적 행복 위에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게 컴퓨터랑 무슨 연관이 있을까? 1954년 초 라캉은 당시의 세계를 엄밀한 의미의 기계적 세계라 했다. 우리는 컴퓨터를 생각하는 기계로 인식한다. 우리는 이것이 살아가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을 사용한다. 그러면 어떻게 컴퓨터의 도구적 사용을 넘어서서 함께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컴퓨터로 최대한 사람의 생각을 모방하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지능 그 자체가 컴퓨터처럼 작동하고 그것처럼 프로그램 되었다면? 하는 의문이 생긴다. 컴퓨터가 어떤 면에서 생각을 모방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체적인 생각의 모방이 진짜 생각하고 어떻게 다른가? 인공지능 반대론자들은 컴퓨터는 단지 프로그램 되었을 뿐이고 인간의 동시적이고 창조적인 행동과 달리 그 자체가 무언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옹호론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창조성과 동시성 또한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행동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전체가 그것의 부분이기도 한 괴델식 논리를 따른다.
해커는 불연속적인 시점에서 시스템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해커가 찾는 불연속 지점, 자기지칭 지점은 지속적인 자기지칭이다. 컴퓨터의 자기 지시성은 이것이 이것의 다른 한 쪽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전환하는 지점에 닫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쁜 무한성의 단계에 남는다. 여기서 컴퓨터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컴퓨터를 인간 뇌의 모델로서가 아니라, 우리는 인간의 뇌 자체를 살과 피로 이루어진 컴퓨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로보트를 인공 사람으로가 아니라 사람을 자연적인 로봇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이르마의 주사 꿈에서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실제는 꿈꾸는 자가 상징적 기쁨으로 들어가는 것에 의해 배제된다. 우리가 실제, 외부 현실이라고 경험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와 같은 배제를 근거로 한다. 가상 현실의 교훈은 실제의 가상화에 있다. 가상현실의 신기루로 인해 진짜 현실 그 자체는 그것의 표출, 순수한 상징적 구성으로 상정된다. 컴퓨터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반드시 생각되어지지 않은 체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원문:
Reading Digital Culture, Blackwel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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