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는 물건인 동시에 기술이고 또한 관념 체계의 일부분이며 일상생활을 바라보는 방식의 하나이다. 이동전화의 기능이 증식하면서 전화는 새롭게 규정되고 있으며 인간의 의사소통 역시 재규정 된다.
이동전화로 마침내 광범위한 의사소통의 시대에 도달한 인간은 지난 세기 철학자들이 열망했던 전 세계적인 공존 그 자체를 달성할 수 있는가?.
이동전화 의사소통의 일차적인 모델은 두 사람이 아니라 수백만의 분리된 타자들에 둘러싸인 한 사람이다. 이는 양자간 혹은 소집단 내 접촉을 중요시했던 의사소통 철학의 전통과 대치된다.
이동전화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의사소통 한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아니라 소유해야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이나 의도를 알리기 위해 의사소통한다.
이동전화 네트워크 안에서는 생명이 없는 의사소통 기기와 시스템이 의사소통 행위자로 활동한다. 이 때 개인 행위자는 소통의 흐름에 의해 체계 속으로 사라진다. 이 때 의사소통이 있던 곳에 체계들이 들어서고 체계가 우리를 대신해 의사소통한다. 메시지는 우리가 개입할 필요도 없이 이리저리 흘러간다.
이 메시지의 흐름 속에서는 고립된 개인만 있고 접촉은 산발적으로 기능적 목적을 위해서만 일어난다. 또 인간 행위자는 메시지의 풍부함에 압도되어 버린다. 정보 내용을 전달하는 기기들 사이의 교환이 대표적인 의사소통 행위가 된다. 이러한 교환 모델에는 이해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서 언어를 통해 이해에 도달해야 할 의사소통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이동전화적 이상적인 의사소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안에는 비판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없다. 더딘 속도로 다가가는 것, 혹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진정한 접촉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며 진정 가치 있는 일이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의사소통은 세상이 이해될 수 있고 경험이 의미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공유하고 고취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거의 의사소통 모델을 이동전화와 연결하면 이동전화 기술이 한층 더 풍부하고 보다 더 인간적인 의미를 지닌 의사소통 개념과 결합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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