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Tracing New Media in Everyday Life and Technology
Edited by Marianne van den Boomen, Sybille Lammes, Ann-Sophie Lehmann, Joost Raessens, and Mirko Tobias Schäfer
Amsterdam University Press
Introduction
From the virtual to matters of fact and concern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 최초로1982년 non-human이 선정되었다. 'Machine of the Year'로 Computer가 선정된 것. 컴퓨터 앞에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의 사진. 2006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YOU'가 선정되었다. 'YOU. Yes, you. You control the Information Age. Welcome to your world.'
24년 사이 컴퓨터가 흥미롭고 신비로운 기계에서 당신을, 당신의 욕망을, 당신의 활동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된 것이다.
Immaterial, im/material, in-material
1990년대에는 뉴미디어를 새롭고 놀라운 어떤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Hypertext, virtual reality, cyberspace가 주요한 단어들이다. 새로운 경제, 새로운 민주주의 등을 외치는 유토피안적 시각과 정보 격차, 정보 과잉 등을 내세운 디스토피안적 시각이 공존했다. 어쨌든 둘 모두 뉴미디어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데 기반했다: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아톰에서 비트로, 물질에서 마음으로의 변화. 이런 것을 디지털 신비주의라고 부른다. 이것은 digitalty와 software가 존재론적으로 뉴 미디어의 비물질적인 결정요인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뉴 미디어와 그것의 효과는 알려진 물질성 밖에 있는 'hyper', 'virtual', 'cyber' 등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처음부터 하나의 이념으로 비판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디지털리티를 올드 미디어로부터의 재매개이론으로 접근했다. 재매개 자체가 디지털 미디어의 메카니즘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뉴미디어 연구는 재매개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여전히 다른 분야와 함께 융합적으로 연구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의 분야가 되고 있다: internet studies, virtual ethnography, game studies and software studies.
최근 연구는 최초의 사이버-논쟁에서 벗어나 뉴미디어와 디지털 컬쳐에로 넘어갔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와 일상 삶에 녹아있는지. 뉴미디어는 이제 여기 우리 사이에 있다.
그래도 이게 디지털신비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양분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85년 Lyotard의 폼피두 전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의 저자들도 디지털 머터리얼리티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그것이 immaterial인지 material인지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in-material로.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는 그것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데이터 케리어에 포함되어(embedded)있다. 즉각적인 물리적 접촉은 없더라도 버추얼 스페이스에 떠 있는 형이상학적 물질로서가 아니라 물질적인것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것. 우리는 디지털 컬처를 material practices of appropriation, 뉴미디어 오브젝트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wetware의 물질 집합체로 본다.
이러한 접근은 문화와 미디어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material turn'과 나란히 하고, 인류학적 사회학적 연구에서의 다시 일고 있는 이 분야의 관심에 이른다. William J.T. Mitchell은 일상 문화의 물질성으로 향하는 이런 이론적 변화를 postcolonial 세계에서의 비물질화에 대한 반향으로 본다. "육체를 떠난, 비물질적 가상성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의 시대가 우리 앞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적인 오브젝트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2004)
Processor, memory, network, screen, keyboard
이 책은 디지털 컬처를 물질적 실천(material practice)로서 접근한다: 기술 속에 설정되어 있는 동시에 일상 삷에서 경험되고 실행되는 물질적 실천.
5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각 섹션은 컴퓨터의 물질 구성을 의미한다. 하드웨어 물질이긴 하지만 소프트웨어 없이는 작동이 안되고, 독립해서도 작동 안 된다.
PROCESSOR: 기계 내부의 작동
MEMORY: 저장하고 불러오는 기기들. 은유적으로는 역사, 반복되는 패턴(recurring patterns) 그리고 영속적인 생각.
NETWORK: 연결, 전송, 확장. 은유적으로는 현대 기계장치의 사회 문화적 집합체는 사회와 일상 삶에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
SCREEN: 그것이 어떻게 사용자를 비추고(reflect) 굴절시키는가(refract). 그들의 활동이 어떻게 보내지고 어떻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비주얼 컬쳐가 연결되어 있는가.
KEYBOARD: 사용자가 어떻게 그것과 인터렉션 하는가. 사용자가 디지털 툴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컴퓨터의 스트럭쳐에 따라 은유적으로 나뉘어진 파트처럼, 이 책은 디지털 머신의 다양한 구성을 다루고, 어떻게 뉴미디어가 디지털 머터리얼로 trace될 수 있는지 본다. 한 가지 일반적인 방법은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문화와 역사로 엮여있는지(interwoven) 보여주는 것이다. Utrecht Media Research 프로그램은 미디어의 문화적 컨스트럭션을 역사적으로(diachronically) 그리고 공시적으로(synchronically) 연구해왔다. 이것은 단지 기술적, 사회적, 기호학적 혹은 미학적 단독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연구는 미디어 방향성의 다이나믹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흩어진 형체들, 경제적 전략, 사회 문화적 기능 그리고 기술적 어포던스와 사용자에 의한 appropriation을 포함하여 다양한 요소의 무리를 trace하는 것이다.
뉴미디어가 단지 머터리얼 컬쳐에 포함(embedded)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고 재조합한다. 이 것은 Matthew Fuller의 다음과 같은 말에 적용된다. 'reality-forming nature of a medium' (실재를 생산하는 미디어의 속성). 뉴미디어가 일상과 분리된 가상 경험을 생산한다거나, 단지 재현이라거나 혹은 단지 은유라거나 하는 견해와 반대로, 이 책은 뉴미디어가 그런 것을 포함하고, 조직하고 생산하는데, 그 것은 그 모든 것들의 집합체이고 또 언제나 물질적인 것이다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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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digital recombination
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미적 경험을 constitute하고 construct하는지 보겠다. 벤야민은 그의 논문에서 기술복제가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변형을 주장, 제의적 가치에서 전시적 가치로. 이 글에서는 첫째, digital recombination의 시대에서는 데이터베이스가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모델을 구성한다, 둘째, 전시적 가치가 manipulation value로 대치된다를 주장하겠다.
벤야민, 예술작품은 시공간적 특성을 규정하는 아우라 때문에 제의적 가치를 가지는데, 기술복제 때문에 아우라가 사라지고 그 제의적 가치가 전시적 가치로 바뀜. 그것으로 대중이 예술에 접근하기 쉬워졌을 뿐아니라, 예술가가 예술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게됨.
기술복제와 디지털복제를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컴퓨터가 비록 이전의 기계와 미디어를 재현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의 특별한 특징을 가진다.
데이터베이스는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스트럭쳐드 된 기록 모음이다. 전통적인 종이 데이터베이스, 전화번호부, 는 플렉서블하지 않다. 그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이름은 고정된 것이다. 그것을 업데이트하려면 새로운 책을 주문해야 한다. 전자 데이터베이스 타입은 1950년대부터 발전해왔는데, 1970년대의 relational model은 다수의 테이블을 포함하는 다차원 모델이다. 요즘의 데이터베이스는 더 플렉서블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거의 모든 분야에 활용된다. 어드민 목적,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서치 엔진, 위키, 그리고 다른 웹 2.0 어플리케이션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는 컴퓨팅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는 물질 메타포(material metaphor)로도 기능한다. 유전공학에 쓰이는 바이오테크니컬 데이터베이스, 산업 로봇에 들어있는 데이터베이스 등. 게다가 데이타베이스는 도구적 기능을 넘어서는 의미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때 데이터베이스는 우리 자신과 세계의 경험을 구성하는 컨셉츄얼 메타포(conceptual metaphor)로 기능한다.
심리학자 Maslov가 망치만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라고 했듯이, 컴퓨터가 주요 기술이 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Manovich는 데이터베이스가 컴퓨터 시대의 주요한(dominant) 문화 형태가 되었다고 했다.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에는 모든것이 복제되상이 된다고 했듯, 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시대에는 모든 것이 recombination과 manipulation의 대상이 된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조와 그것의 변형가능성이 예술 작품의 미적 퀄리티를 결정한다. 데이터 베이스 자체가 autonomous work of art가 될 수 있다.(p. 102)
데이터베이스를 recombination할 수 있는 방법은 무제한적이기 때문에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 각각의 변형된 것이 유니크하다. (auratic copies) 그래서 제의적인 퀄리티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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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beyond the artefact
Lessons from participatory culture
디지털 미디어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물었다. 디지털 기술이 네트웍화되고 high connectivity를 갖게 되자, 새로운 소셜 미디어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collaboration의 새로운 형태를 가능하게 했고, collective intelligence를 제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중앙집중적인 기관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침식시켰다. Collaborative news networks는 기존 언론과 경쟁한다. 음악 파일 교환은 기존 레코드 업계와 경쟁한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한다.
그와같이 아카이브의 세계도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아카이브는 문화의 재생산에 사용되는 사회적 에이전트로 활용되었다. 기관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정보의 보관소로 사용되는 아카이브는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사회 문화적 힘의 구조를 지탱하게 한다. 공간과 리소스의 실재적인 한계를 고려하면, 어떤 편지를 보관하고, 어떤 신문을 저장해야 하는 지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런 결정은 기관(institution)이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를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dominant 클래스의 시선을 구조화한다. 그러나 새로운 배포 방식, 향상된 저장 용량 그리고 빨라진 전송 속도를 통해서 블로그, 위키, 채팅 스페이스와 같은 소셜 미디어 형태를 가능케한 소셜 미디어는 아카이브를 social agent에서 social practice로 재정의 할 수 있다. Bottom-up 다이나믹을 이용해서, 그것들은 지배 앨리트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 기업 미디어의 제한 밖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생산을 다루는 것으로 사회적 형태의 훨씬 넓은 범위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디지털적으로 네트워크된 문화의 이점으로인해, 넓은 participation을 encourage할 것이다.
아카이브는 그것이 처한 환경을 반영한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한다. 네트워크된 디지털 기술과 participatory culture는 문화적 생산과 소비에 새로움을 가져온다: 새로운 생산자와 사용자, 새로운 컨텐츠와 collaborator들을 만드는 것으로.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아카이브의 힘과(capacity) 법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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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cipation inside?
User activities between design and appropriation
뉴 테크놀러지는 사용자들이 문화 산업의 상품을 생산하고 분배하는데 크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활동을 일으켰다.
Henry Jenkins, participatory culture에서는 사용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사라지는데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low barriers to artistic expression and civic engagement, strong support for creating and sharing one's creations with others, informal mentorship, the belief that their contributions matter, and members feel some degree of social connection with on another.
문화 연구에서는 participation은 관객이 미디어 텍스트를 받고, 해석하고 해체하는 것, 그리고 최근에는 차용하고 창조하는 행위를 통해 문화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은 참여를 explicit하고 conscious한 과정, 대게 문화 산업계로부터의 문화적 자유를 얻는 것에서 동기를 갖는, 으로 보는 이념적인 함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Web 2.0은 implicit한 participation을 보여준다. 사용자의 활동이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의해 channeled 되고 directed 된다. 최근의 연구는 미디어 산업계가 어떻게 그러한 활용을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시켰는지 보여주었다.
Explicit하고 implicit한 참여를 만들어내는 메카니즘은 복잡하다. 여기서는 massive 사용자 인터렉션 현상을 묘사하고 분석하겠다.
Mapping user activities
일반적으로 participatory culture는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Accumulation: 기존 미디어 산업계 내에서 만들어지는 텍스트를 기반으로하는 모든 활동
Archiving: 디지털 산물의 조직, 유지 그리고 분배에 관한 것-indexing, storing and structuring data for access and easy information retrieval
Construction: 기존의 생산 분배 체널 밖에서 일어나는 생산 형태-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위에서 본 유저 활동의 세 가지 영역은 기존 문화 산업계를 확장하고 새롭고 복잡한 생산자 소비자 관계를 형성한다.
Material aspects of design and appropriation
기술적인 요소 때문에 몇몇 디지털 생산물은 다른 것들보다 더 쉽게 reused, modified and developed될 수 있다. 이러한 quality를 Hughes and Lang은 transmutability(변질가능성)라고 불렀다. 모든 software-based 산물은 컴퓨터 구성요소와 소프트웨어가 변형에 열려있기 때문에 변질가능하다. 모든 상업적은 software-based 제품은 개발의 second stage로 들어갈 수 있다. 닌텐도 게임보이가 음악 연주 기기로 사용되고, 로봇 진공청소기 룸바가 AI연구 실험에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제품의 변형은 컴퓨터 기술의 기본적인 affordance에 뿌리를 두고 있다.Affordance는 material과 artifact의 특별한 quality로 그것의 디자인과 활용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이 조직되고 구조화 된 생산의 수단이다. 언어처럼 소프트웨어의 특정 부분은 전혀 다른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 모든 소프트웨어는 저장소, 문화적 resource가 된다,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고 동시에 contribute할 수 있는. 문화적 자원으로서의 소프트웨어는 지구적 인프라스트럭쳐를 구성하고 모든 사용자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통해서 분배되고 사용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인터넷이 현대 사회의 협업과 소통을 위한 주요 미디엄이 되고 모든 종류의 정보를 위한 universal archive가 된 기술적 qualities의 hybrid 무리 때문이다.
냅스터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은 컴퓨터 기술, 소프트웨어, 인터넷의 affordance와 그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냅스터는 file-transport protocol과 채팅 프로그램 그리고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결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 산업계가 디지털 혁명을 간과하고 있었을 때, FTP, MPEG, WinAmp, 파일의 automated indexing, retrieval, distribution 프로그램의 appropriation을 통해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미디어 텍스트의 전자적 전송의 방식이 개발되었다.
냅스터의 역사는 기술의 availability에 어떻게 generate하고 use하고 recombine하는 지식이 더해지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user의 participation은 커뮤니티 가치나, 사회적 인터렉션, 일반적인 소통과 별개로 자동화된 과정으로 되었다.
사용자의 행동은 내부의 동기에서 일어나고 팀이나 단체로 일어나는 explicit participation을 축으로 일어난다라는 의견이 있고, 또 소프트웨어 디자인의 한 부분으로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implicit participation이 있다. 이것은 현재의 정보 시스템을 향상시키고 문화적 생산물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
Participation as design or the return of the audience
문화산업계는 컨텐트를 만드는 것에서 사용자 중심 활동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플리커와 같은 photo platform에서 사용자는 그들이 개인적인 사진을 올리고, 제목을 다는 것이 어떻게 플리커 정보 시스템을 확장시키는지 인지하지도 못할 니도 모른다. 단순히 사진을 올리는 것을 통해서 사용자들은 카메라 모델, 사진찍은 날짜와 시간, 카메라 세팅에 대한 데이터를 contribute한다. Exchangeable Image File(ECIF)이라고 불리는 이런 데이터는 일반적인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일반적으로 붙는 메타데이터이다. 테그, 키워드를 사진에 더하는 것으로 사용자는 시스템이 가진 의미 정보 추출의 약점을 보완한다. 기계는 사진을 읽을 수 없지만, 메타 인포메이션은 읽을 수 있다.
((요즘의 문화산업계에서는 컨텐트를 만드는 것에서 사용자의 참여를 이끄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사용자가 컨텐츠를 자동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서는 사용자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들일지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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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you get is what you see
Digital images and the claim on the real
1898년 Boleslas Matuszewski는 프랑스에서 사실적 필름을 위한 저장소를 만든 것을 축하하는 책자를 발간했다. 그것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역사적 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Animated photography는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으로는 경쟁상대가 없으므로, 공식적인 아카이브에 저장되어야 한다고 주장. 영화 이미지는 manipulate되기 어려우므로 가장 가치있는 과거의 증거라고.
Brian Winston은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이미지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manipulation, reshape, fake and forge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서, 사실성(claim on the real, by Andre Bazin)을 가지던 기록 사진과 영화의 전통에 끝을 맺었다라고 했다. 사진이미지와 사실성의 관계는, 사진이 물체로부터 반사되는 빛의 흔적이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필름에 새겨지는 이미지라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다. Charles Sanders Peirce의 아이콘이면서(그것이 재현하는 물체와 정확히 같은 점) 인덱스이기도 한(그것이 지시하는 것에 대해 가지는 물리적 연결의 결과)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는 사진의 기호학적 속성에 따라, Peter Wollen(1998)은 Bazin의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한 생각과 Peirce의 indexical sign 컨셉의 유사성을 주장. Indexicality는 전통 사진과 필름의 본질적인 질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authenticity, accuracy and precision'의 보장이며, 그러므로 truthfulness라고. 그런데 이것은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변형되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변형가능성(mutability)는 사실의 기록물로서 시네마 기록의 가치를 손상시켰다.'
디지털 기술이 정말 아날로그 사진 이미지와 the real 사이의 링크를 약하게하거나 파괴할까?
Technology: what you get
Matuszewski, Winston, Manovich의 주장은 질적인 것보다 양적인 것에 근간을 두고 있다. Matuszewski는 필름의 각각 이미지를 리터치 하기 어렵다는 주장, Winston과 Manovich는 디지털 이미지가 얼마나 변형하기 쉬운가.
반면 어차피 일정한 개입은 필수적이다. 어떤 필터, 렌즈를 사용할 까. 어디서 사진을 찍을까. 셔터 스피드 등. 그리고 그 이후의 암실 작업에서의 선택.
그래서 한계는 무엇인가? 사진가가 정당하게 사진으로부터 없앨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플래쉬 자국? 적목현상?
Schwartz는 사진의 진실성을 유지하기 위한 세 가지 전략을 제시: 카마라가 보는대로 찍어라, 같은 장소에 있는 어떤 사람이 보는 듯이, 사진가는 저널리즘적인 재현 방식과 일관되게 결정을 하라. 그런데 어차피 이런 것들도 객관적이지 못하다.
이런 것들은 디지털 기술이 나오기 이전의, 변형가능성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진의 claim on the real은 항상 약했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화가 사진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지운 것이 아니라, 단지 사진 이미지를 생산하고 제시하는 행위에서 일어나는 변형과 개입의 다양한 형태만을 다시금 일깨운 것 뿐이다.
Indexicality: what you see
디지털 기술이 사진의 지시성을 축소시키지는 않았을까?
Tom Gunning은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사진은 아날로그 카메라가 기록하는 것과 같은 빛의 양만큼의 데이터로 기록한다. 그러므로 기록된 사진 이미지가 비슷하다. 디지털과 필름의 차이는 기록된 정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어떻게 저장하고 옮기고 변형하고. 그러나 숫자 데이터로 기록하는 것은 지시성을 없애지 않는다.(그러므로 디지털 사진이 여권 사진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
David Rodowick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프로세스의 존재론적 차이를 논한다. 그는 재현된 물체와 관련짓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만약 아날로그 미디어가 사건의 흔적을 기록하고 디지털 미디어는 숫자를 생산한다면, 디지털 acquisition은 새계를 변형가능한 숫자의 시리즈로 quantify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근본적인 automatism이고 디지털 컴퓨티의 창조적인 힘의 원천이다. 반면, 사진적 자동성(photographic automatism)은 uniform한 물질의 공간적 분절을 가져온다. 두 종류의 사진은 조건적 의지(counterfactual dependence)의 질의 결과로서 믿을 만한 재현을 만들어낸다.(대상의 변화가 이미지에 대응적으로 나타나고, 그 질은 지시성의 논리에 달려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또 질적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인풋과 아웃푼 사이의 인과 관계가 연속적이냐 비연속적이냐. 그래서 아날로지컬 transcription은 디지털 conversion or calculation과 구분되어야 한다.
Gunning과 Rodowick 모두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지시성의 논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두 과정 사이의 질적인 차이의 결과로 일어나는 임팩트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인다. Rodowick은 디지털의 존재론적인 차이가 'unbecoming of photography'를 가져온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이 존재론적인 차이가 아니라 사진의 지시성(claim on the real과 관계하는)이기에 넘어간다.
Roland Barthes가 이야기 했듯 사진은 항상 카메라 앞에 있었던 무엇인가의 흔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있음을 그것이 어땠음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Rolan Barthes가 이전 글에서 사실 그 것을 언급한다. 사진은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음에 대한 증거라고. 그런데 그것은 지시적인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사실 1980년 그는 그의 책에서 사진의 증거적 힘은 사물의 거기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한정시켰다.
사진의 지시성은 '거기 있음'만 확인시켜줄 뿐 claim on the real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다. 사진이 보는이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이해되고, 판단되고 받아들여지고 거부되는 지 등도 중요하다. 사진의 truth claim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가 않다,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viewer는 'enunciator supposed to be real(진실로 여겨질 진술)'(Odin 1984)을 구성할 수 있다.
Practices: what you get to see
역설적으로, 뉴미디어는 디지털 이미지의 지시성을 중시하는 활동의 확산을 가져왔다고 주장할 수 있다. 플리커나 유튜브의 애완동물 사진, 유명인사 사진, 사람들의 지루한 일상 사진, 이런 엄청난 수의 디지털 사진의 사용은 그것이 가지는 지시성에 달려있다.
나아가, 디지털 미디어는 분배의 새로운 채널을 제공하고, 새로운 다큐멘터리 형태를 만들고,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활용하고, 인터렉티브 요소를 가미시키는 등의 실험을 할 수 있게도 한다. 온라인 아카이브와 플랫폼은 엄청난 수의 다큐맨터리 이미지를 accessible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전통 사진 이미지와 다름없이 대한다는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Rodowick은 그런 새로운 방식의 분배와 순환 형태는 이전 practice의 연속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분절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컴퓨터가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걱정으로, 우리는 그것이 복사하고 전달할 수 있는 더 큰 힘에 대해서는 잊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새로운 힘을 나타낸다-더 좋은 복사물로서뿐만 아니라, 확산의 용이성으로. 한가지 중요한 차이는,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더이상 존재론적인 당혹감을느끼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사진은 개인적인 것보다는 더 사회적으로 되었고, 현재와 과거 미래의 관계보다는 현재 자체에 맞추어졌다. 상징적이고 기호적인 것에 있어, 그것들은 정보로서의 이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여기서 그것들은 provenance, reliability, accuracy, and context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된다.'
Rodowick의 이러한 주장은 사진 매체를 정의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한 가지 사용법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기술이 미디어로서의 사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디어 변화는 새로운 미디어의 성향의 emerge와 함께 그 자신을 증명한다. 미디어를 머터리얼 기술, 이것이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위치 그리고 이것이 만드는 textual 형태의 내적인 관계로 본다면, 더 정확하게는 그런 dispositif의 일부는 보존하고 또 일부는 변형하고 완전히 바꾸는 배열로 보는 것. 디지털 매체에서 재매개된 화학 사진은 그것의 전통적인 manifestation과 다른 dispositif내에서 프린트 된 이미지로 기능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미지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dispositif를 분석해야 한다.((그 dispositif가 의미를 결정할 것이므로))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사진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image literacy를 갖는 것.
"The emergence of digital technology has not affected photography as a medium"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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