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8 March 2013

존 발데사리 John Baldessari


John Baldessari (b. June 17, 1931, National City, California)

1949-53   B.A., San Diego State College. San Diego, CA.
1954-55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Berkeley, CA. (Art History)
1955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Los Angeles, CA.
1955-57   M.A., San Diego State College. San Diego, CA.
1957-59   Otis Art Institute. Los Angeles, CA.
               Chouinard Art Institute. Los Angeles, CA.


San Diego State College에서 master's degree를 받은 후 LA로 가 회화의 여러가지 주제와 스타일에 관해서 실험했다. 그 지역에 만연하던 스타일을 따르는 것을 뒤로하고 1959년 고향인 National City로 돌아온다.
1960년대 초반 JB는 주위 풍경들에 영감을 받아 이전에 캔버스에 그렸던 주제들을 상기시키는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 사진들을 그림을 위한 소스로 이용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사진이기도 했다. 또 건물에 붙은 광고 쪼가리에서 찾은 글자들을 작품에 이용. 광고 일을 하던 친구가 버려진 포스터를 갖다주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JB는 그런 이미지 조각들을 추상 구성의 바탕으로 사용했다. 또 광고 스크랩 이미지를 돋보기로 확대해서 벤데이 점(Benday Dot) 패턴 그림을 만들기도 했다. 1965년의 이러한 작품들은 전통 회화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JB는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 계속 물음을 던졌다. 1967년 JB는 자동차를 타고 National City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고 다른 한 손은 창밖으로 내밀어 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차를 세우고 그 장소의 이름을 적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구성이나 톤은 상관하지 않고 특수 코팅 된 캔버스에 그 흑백 이미지를 인쇄했다. 그리고 간판업자를 고용해서 사진 아래에 장소의 이름을 적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작품의 제목이었다.


Econ-O-Wash, 14th and Highland, National City, Calif., 1966–1968
Acrylic and photoemulsion on canvas; 59 x 45 in. (149.9 x 114.3 cm)
Courtesy the artist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Paris
© John Baldessari



작품에서 예술가 자신의 손을 제거하고, (가끔 사진 인화도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도 했다) 작품의 주제를 자신이 자란 동네의 일반적인 풍경으로 택함으로써 JB는 "미화시키는 일 없이 그리고 아무리 추하더라도 진실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살았던 곳으로부터 작품을 만들 수있다"라고 여겼다.

동시에 그는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분 짓는 학계의 언어에 의문을 던지는 캔버스 회화 작품들을 만들었다. 예술가 교육 메뉴얼, 예술사 글, 사진책 등에서 취한 인용 문구를 자신의 사진과 짝지었는데, 이미지와 그 텍스트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었다. 몇몇 작품은 텍스트만으로 구성되기도 했는데 'Everything is Purged...'(1966-68)의 경우 캔버스에 'Everything is purged from this painting but art, no ideas have entered this work (이 그림에서 예술만을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Everything is Purged..., 1966-68. Acrylic on canvas, 68 x 56 inches. The Sonnabend Collection. 

그가 동시대 예술에 관해서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National City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LA, New York, Europe에 비해서는 비교적 변두리에 있음을 의미하였다. 1968년 Paul Brach가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 예술학부를 설립하면서 JB를 조교수로 임명하였다. 그 해 같은 학교에 교수로 있던 David Antin이 JB의 첫 번째  LA 전시를 주도했다. 이 때,  Text, Phototext 작품을 Molly Barnes 갤러리에 전시했다. 같은 날 옆 갤러리 Gallery 669에서 전시를 연 Joseph Kosuth는 'Nothing'의 자전 정의들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JB는 Joseph Kosuth뿐만 아니라 Robert Barry, Mel Bochner, Walter De Maria, Dan Graham, Douglas Huebler, Sol LeWitt, Lawrence Weiner 등의 Conceptual Artists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개념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동시에 그는 지형적으로 떨어져서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Commissioned Paintings' (1969)에서는 아마추어 화가들에게 자신이 생각해낸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JB는 친구 George Nicolaidis가 손가락으로 일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화가들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JB는 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 그림에 손가락이 어떻게 그려졌나 비교하면서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겠지요" JB는 그 시절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한 가지 이상의 답을 제시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선택이라는 주제는 이후 작품에도 나타난다. JB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물건을 선택하도록 한 다음 그것들을 촬영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JB가 자주 보여주는 특정한 병렬 배치의 모티베이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비교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것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상적으로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즐거운. 또 누군가에게는 훨씬 많은 layer를 줄 수도 있는... 그래서 내 일은 Paradox로 가득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1969년 즈음 JB의 작업실은 팔리지 않은 그림들도 가득찼다. 그해 12월 그는 작업실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 그리고 1970년 회화 작업을 완벽히 중단하고 1967년 이전 작업들을 모두 태워(cremated)버렸다. "내가 작품을 보관하는지 어떤 사람이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왜냐하면 내게 흥미있는 것은 탐구(investigation)이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는 것."

1970년대에  JB는 계속해서 전통적인 예술 제작 분류에 대해 탐구했다. conceptual, minimal 같은 용어는 유용해보이면서 동시에 제약적이었다. "conceptual이라는 말은 첫째로 회화, 둘째로 조각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유용한 용어이다. 개념 미술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카테고리는 차치하고, JB의 작품은 기호학 이론에 영향을 받아 언어의 다양성을 탐구했다. (단어와 이미지가 서로를 어떻게 대신하는지). JB는 1971년 두 개의 전설적인 전시를 갖는데 둘 모두 언어와 이미지의 합일점(confluence)에 기반한 것이었다.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초대전을 제안했는데 거기까지 갈 만큼 비용이 제공되지 않았다. 대신 JB는 학교 학생들에게 갤러리 벽에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라고 반복적으로 적게 했다. JB역시 30분 간 같은 글귀를 적어서 비디오로 촬영했다. 비슷하게 'Police Drawing'은 구어적 정보가 시각적 정보로 바뀔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룬다. JB는 한 친구의 커뮤니티 컬리지 아트 클래스에 방문해서(알리지 않고) 10분 간 돌아다녔다. 후에 police artist(JB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가 와서  학생들에게 JB의 인상착의를 묻고 그것을 근거로 그림을 그렸다. JB는 그 스케치와 비슷한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John Baldessari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1971. Lithograph. composition: 22 3/8 x 29 9/16" (56.8 x 75.1 cm); sheet: 22 7/16 x 30 1/16" (57 x 76.4 cm). John B. Turner Fund. © 2010 John Baldessari. 

1970년대에 JB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찾은 이미지(found image)가 재밌는 것은 이것들이 art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나는 사진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영화 스틸 이미지, 신문, 잡지 이미지는 넘쳐났다.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주제와 관련한 제목들을 붙여서 파일로 정리했다. "총(guns)과 키스(kisses)가 첫 번째 파일들이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들 파일도 갖고 있다-꼭 서부 관련이 아니더라도- 그냥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들. 이런 재료(material)은 은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뇌를 자극하도록." 이런 사진들이 어떻게 네러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이해하면서 JB는 필름 스틸 이미지를 점점 더 사용하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얼마나 심오하게 그런 연결이 가능한지 드러내면서. "I realized I was tapping into this collective unconscious, what people think about as a surrogate life.(나는 내가 이 집단 무의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대리 삶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JB는 이 found image의 시퀀스를 관련있는 것이나 이질적인 것으로 모아서 격자나, 일자, 혹은 자유롭게 배치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배치에는 항상 어떤 구조나 개념적인 바탕이 있었다. 'Blasted Allegories'(1978)에서 JB는 다양한 필터를 이용해서 TV 스크린을 직접 촬영한 광고 이미지를 배열했다. 각각의 사진에는 관련 단어가 할당되고, 알파벳 혹은 색깔 기준으로 정리되었다. 새로 배치된 그 이미지들은 단어와 함께 새로운 정형화된 문장을 형성했다. 콜라주와 몽타주 기술을 사용해서 JB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각적 체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그리뜨가 그랬듯, JB는 의미는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치(juxtapositions)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Blasted Allegories (Colorful Sentence):...Green/Threat
1978
Color photographs and pencil on board
30 3/4 x 40 inches


1980년대에 이르러 JB는 텍스트 없이 found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는, 1960년대 자신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텍스트는 이미 Cubists, Futurists, Dadaists, Pop artists 등에 의해 쓰이고 있었지만 그림의 주제로 우선시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텍스트가 예술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싸움에서 이겼다"라고 느꼈지만, 사진 이미지의 사회적 영향력(pervasiveness) 때문에 그것이 가진 중요한 의미를 꿰뚫는 시각으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에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일반적으로 20세기에 우리가 TV에서 보는 모든 영화,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실제로 거리를 걷고 식품점에 가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나는 그 두 세계를 뒤섞고(commingle) 싶다." 텍스트는 완전히 제거하고 오로지 사진의 배치에만 의지하는 것으로, JB는 이미지-텍스트가 만들어내던 네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단어 없이도 그러한 작품들이 의미 생산을 위해서 여전히 언어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때, JB의 구성은 그가 "정보를 나타내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활용했던 사각형 포맷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내부로 부터의 프레이밍(framing from within)"이라고 칭했듯 주제가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를 결정하도록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얼굴을 동그랗게 칠해서 가리는 테크닉을 사용했다. 점점 많아지던 사진 파일들 중의 하나는 "civic portraits"였는데, 그가 설명하기로 "은행 개업 때의 은행장이나 변호사 클럽에서 누군가 의사봉을 전달하는 그런 장면 사진들". JB는 그런 삶을 혐오했고,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식별가능한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이미지를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그와같은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에  파헤쳐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얼마 간의 실패 끝에 JB는 스튜디오에 있던 동그란 가격 스티커 (price stickers)로 얼굴을 가렸다. 그 이미지들은 즉시 힘을 잃어버렸다.(rendered powerless)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 사람들을 지워버린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모를겁니다.(there was such a flood of relief, you couldn't believe it felt so satisfying to obliterate theses people." 유명인사들이 무명으로 변했다. 얼굴 (이후에는 신체 일부)를 가리는 것으로 개인성을 없애고 특정 사람을 무명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렸다. 하얀 점은 이후에 컬러 점으로 대체되었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빨강은 위험, 녹색은 안전 등.

 
Tiger (Orange) and Trainer: With Three Figures (Red, Yellow, Blue), 2004
Three dimensional digital archival print with acrylic paint on Sintra, Dibond, and Gatorfoam panels
119 in x 147 in x 3 in
© 2004 John Baldessari

1990년대 중반  JB는 사진/텍스트 작품을 다시 시작했다. 1996년에 National City로 돌아와 30년 전 작품에 나왔던 장소들을 다시 촬영했다. 많은 장소들이 1960년대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변했고, 자신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그것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은 대비되는 요소들을 병렬배치(juxtaposing)하는 것에 대한 그의 계속되는 관심을 보여준다. 그의 예술은 반대되는 주제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합치는 것으로 삶의 복잡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Somewhere Between Almost Right and Not Quite (with Orange)'(2004)에서는 JB는 'betweeness'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B급 필름 스틸에 색을 덮어 칠해서 근본적으로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노랑과 빨강의 중간 색인 오렌지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 색으로 사용된다. 

몽타주 프로세스를 이용해서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것으로 JB는 다시 의미는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차용(appropriation)을 이용해서 맥락변화(contextual change)로 인해 일어나는 의미변화를 강조하는 JB의 작품은, 의미를 만들려는 인간의 충동을 그 주제로 취한다. "뭐, 내가 확신한다고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두 가지가 어떤 magnetic proximity로 함께 있을 때, 의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두 단어, 두 이미지, 두 물건, 그게 어떤 것이든. 그 의미에 대해서 일반성이나 동의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건 문화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것들이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를 매혹시킨다"


원문 텍스트: Not Just People Falling Off Horses by Tracey Bashkoff from John Baldessari: Somewhere Between Almost Right and Not Quite (With Orange), 2004,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A Brief History of John Baldessari>

이미지와 기호

이미지와 기호, 마르틴 졸리 저, 이선형 역, 동문선, 2004


서문
이미지에 대한 접근 형태는 연구와 관찰에 따라 그 영역이 달라진다.
이 책은 고정된 시각적 이미지에서 생겨난 기호들을 통해 의미의 생산 양식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해 고찰하겠다:
1. 기호학의 토대가 생성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미지 기호학과 그 발달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 (기호학을 통한 이미지 분석은 이미 근거가 없다고 보고있음)

2. 이 학문에 대한 연구가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 사회에서 시각적인 이미지의 위상에 대한 근거를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이해

3. 이러한 도구들이 시각적 메시지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하는 기능 연구에 있어 효과적이고 역동적인 도구라는 것을 미래지향적으로 보여 주고자 함


제 1장: 이미지를 기호와 기호학적 연구라는 특수성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기호학과 기호론의 어휘를 정의.

제 2장: 이미지의 위상을 탐구. 이미지는 도덕 가치에 중심에 있고, 이 사실은 이미지의 특징이 이미지의 닮음의 성격보다는 이미지의 흔적이라는 성격에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줌. 여기서 이미지의 닮음이란 이미지의 특이성일 뿐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모든 의심의 근원이기도 하다.

제 3장: 이미지를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기호학이 제공하는 개념과 도구로 다시 되돌아 올 것. 사회, 문화적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해석 및 의미 작용이 이끌어 내는 커뮤니케이션의 컨텍스트 유회와 역사적으로 정의된 이미지의 인수의 유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전망.

제 4장: 분석의 방법론 제안. 신문, 잡지에 실린 사진들의 특수한 예를 제시하면서 기호학적 연구가 어떻게 그 수사학의 문제와 불확실한 특이성의 문제에 접근하는지 살펴볼 것.


제 1장 기호학적 연구

제 1절 현대 기호학의 출현과 발전
기호학이란 어휘는 고대인들에게 의학 분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였고, 기호의 개념은 계혹 있었으나 인문학에서는 20세기 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논리학자 퍼스, 언어학자 소쉬르

퍼스
기호에 관한 일반 학문. semiotics라고 명명.
1931~1935년 처음 여섯 권으로 출판된 선집 이래 1958년에 연이어 저서 소개
아래 세 방향으로 발전
-순수 기호론으로 언어철학 및 언어학에 관한 부분.
-서술기호론으로 행동주의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비언어적 언어(이미지, 의상 등)와 비언어적이며 사회적인 행동(공간과 시간과 몸짓의 사회, 문화적인 관리)를 연구
-응용기호론 기호와 개인 사이의 관계를 연구. 화용론에 관심

소쉬르
-정통파들은 랑그, 모스 부호, 교통 신호, 승강기 신호와 같은 무한한 요소들로 구성된 기호들을 이용하면서 목적을 지니는 커뮤니케이션만을 연구. 커뮤니케이션 기호학.
-의미 작용의 기호학은 매우 유연. 여기에서 하나의 코드는 열려진 체계, 어떻게 보면 모호한 체계, 다른 코드나 구조화된 관찰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다. (롤랑 바르트가 이 흐름)

에코는 과학적인 기호론의 토대를 버리고 인식론.
보드리야르는 사회학적인 시각.
푸코, 데리다, 들뢰즈는 역사적, 철학적 시각.
라캉은 정신분석학적 시각.

이미지 기호학
1. 특수 기호론: 이미지를 통해 의미 작용 이론의 요소들을 제시
2. 응용 기호론: 기호론적 도구를 사용하여 이미지 분석의 방법론적인 예를 제시

에코: 기호론은 오늘날 커뮤니케이션과 의미 작용의 기능을 묘사하는 일종의 연구 테크닉이다.

제 2절 글쓰기에서 이미지로
기호학 연구를 위해 도구로서 혹은 비교로서 언어학이나 언어학의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음.
연구 대상에 따라 정신분석학, 미학, 사회학, 역사학, 예술사 혹은 철학 등에서 분적의 도구를 차용하기도 함.
반대로 기호론적 방법이 다른 학문의 영역의 일정한 부분을 이해시키거나 상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음.

제 3절 기호학자의 이미지
우리가 상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들의 여러 형태 가운데 이미지를 특별한 기호로 고려하는 것.

퍼스: 기호는 어떤 관계 혹은 어떤 타이틀하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대신하는 어떤 것이다.

소쉬르: 언어학적 기호의(랑그의 의미 단위)의 성격을 표현하면서 두 어휘에 대한 하나의 구조를 제안. 랑그가 목록의 총체, 즉 다른 것에 상응하는 언어학적인 기호라는 이념을 버리고, 언어학적 기호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분리할 수 없는 앞면과 뒷면으로 된 한 장의 종이와 같은 정신적인 실체에 해당한다고 생각. 시니피앙이란 기호에 있어 지각이 가능한 물질적인 측면(소리나 글로 쓴 흔적)으로 시니피에와는 문화적, 자의적, 관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니피에는 사물이 아니라 컨셉에 해당한다.







기호의 개념
퍼스: 기호는 어떤 관계 혹은 어떤 타이틀하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대신하는 어떤 것이다. (46)
에코: 기호론은 오늘날 커뮤니케이션과 의미 작용의 기능을 묘사하는 일종의 연구 테크닉이다. (30)

기호의 분류
소쉬르: 언어학적 기호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분리할 수 없는 앞면과 뒷면으로 된 한 장의 종이와 같은 정신적인 실체에 해당한다고 생각. 시니피앙이란 기호에 있어 지각이 가능한 물질적인 측면(소리나 글로 쓴 흔적)으로 시니피에와는 문화적, 자의적, 관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니피에는 사물이 아니라 컨셉에 해당한다. (47)
퍼스: 기호를 표상(시니피앙) 오브제(지시대상물) 해석항(시니피에)의 삼각형 구조로 제시. (48)
퍼스: 표상과 오브제 사이의 관계 기준에 따라 기호를 도상, 지표, 상징의 세 형태로 나눔.(50)
도상-도상이란 시니피앙이 표상하는 것, 즉 시니피앙의 지시 대상물과 유사한 관계를 가지는 기호.
지표-그것이 시지하는 것과 물리적으로 인접한 관계. 인과 관계의 특징을 지닌 기호.
상징-자의적이고 관습적인 관계를 제시하는 것과 관계. 언어학적 기호를 이 범주에 포함.

도상을 이미지, 도식, 메타포로 제안.
이미지- 시니피앙과 지시 대상물 사이의 질적인 유사성을 실행하는 도상적 기호. (시각적이지 않은 이미지도 있을 수 있으나 시각적인 것에만 알아보겠다 이 책에서는)
도식- 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 것, 오브제의 외적 측면이 아니라 내적 관계. 지도, 카드, 회로.
메타포- 질적인 유사성.(??) 상징은 연속성(닮음)뿐만 아니라 인접성(지표)와도 단절되어 있으며 임의적인 기호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미지 기호학은 이미지를 특별한 기호로 간주하고 기호학의 방법론을 통해 이미지의 의미 작용을 분석을 시도한 것))


고대의 의심
그림 이미지: 이미지 미메시스
플라톤-그림 이미지는 세 단계의 것으로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 무지하며 인간의 이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감동시키며 기만한다. (70)
아리스토텔레스-이미지가 제공하는 즐거움은 의심받을 것도 아니며, 품위를 타락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깨달음의 동기 부여를 제공하는 것. 결국 모방과 이미지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세계의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진실 및 지식과의 관련 속에서 판단된다.
도상적 기호, 속임수 흉내 왜곡 혹은 환상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 모든 함축 (74)

흔적 이미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이미지
이미지에 대한 어휘 eikone 자연적인 이미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 이러한 형태의 이미지는 진실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엄숙하게는 성스러운 죽음과도 연결되는 것.
그림자 혹은 반영. 지표의 현대적 개념에 부합하는 것 등의 자연적인 이미지는 플라톤에 의해 저열한 모방으로 간주되어 추방된 것이 아니라 그 지시적인 성격으로 인해 인식의 도구로 인정되고 있다. 동굴의 비유에서 그림자를 보고 밖으로 가게 되는 것처럼. (76)



성상과 성상파괴주의
기독교, 더 구체적으로 비잔틴 종교에서는 종교적 이미지를 '성상'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성모마리아, 천사들과 성인들이 그려진 이미지는 오리엔탈 교회에서 개인적인 예식 및 의례적인 예식의 대상물이 되었다. 이 이미지는 매우 엄격한 규율에 의해 그려졌지만 그렇다고 유사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 초상화를 보면 영혼의 안식처로 간주되는 이마와 눈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입이나 코처럼 감각적인 부분은 축소되었다.(78)

성상파괴주의자들은 성상이 지닌 지표적인 성격 때문에, 성상이 육체적으로 신과 연결되어 있어서 신성과 인간성을 존재론적으로 분리해야 함에도 이를 뒤섞고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82)

이미지는 가식이라던가 진실이라던가 라는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의심은 무엇보다도 기본적 이미지의 지표적인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 이 특징은 모든 이미지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구성하며, 현실과 진실을 혼동하게 한다. 세계에 대한 기호-흔적으로 간주되는 이미지는 일종의 표상이라든가 이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사물 자체, 현실 자체의 부분이나 전체가 된다. 그러므로 이미지는 진실일 수밖에 벗는 세계의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표 이미지는 신, 인식, 죽음과 같은 본질적인 것을 이끌어 낼 수 있다.(93)

이미지의 힘은 지표의 흔적이라는(물리적인 끈)이 본질적이다. 이미지의 힘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유사함이 아니라 지표라는 것.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닮음의 특징에 우선적으로 의거해서 이미지를 본다(106)

((이미지를 그림 이미지와 흔적 이미지로 나누는데, 전자는 퍼스의 도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플라톤은 비난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 및 지식에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생각. 후자는 지표에 해당하는 것으로 진실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엄숙하게는 성스러운 죽음과도 연결. 그것을 성상파괴주의자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서 이미지는 지표적 성격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특수 이미지로서의 사진
19세기초부터 사진은 현실에 대한 완벽한 모방으로 간주되었다. 사진은 예술가의 손을 직접 거치지 않고도(다만 광학과 화학의 법칙에 따라) 자동적이고 객관적이고 거의 자연스러운 방법의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기계적인 방법 및 테크닉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사진 이미지는 만돌린, 베로니크의 베일, 그리스도의 성해포와 같은 인간의 손으로 제작되지 않은 이미지의 이미지이다. 따라서 사진의 이미지는 예술가의 재능, 천재성과 그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과는 대립된다. (101)

사진에 대한 최초의 개념은 현실적인 것의 완벽한 미메시스로 정의내리고 있는데, 이는 퍼스가 정의 내린 것처럼 도상적 기호의 모범적인 형태. (102)

1960년대 구조학과 기호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사진이 갖는 닮은꼴의 환상적인 성격을 고발하고, 사진을 통해 제시된 강력한 현실의 효과의 토대가 무엇인지 분석, 사진의 약호화를 체계적으로 분해하고, 다른 모든 이미지처럼 사진도 현실을 변형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렇게 사진은 세계의 인습적인 모든 표상을 합류시키면서 상징에 대한 퍼스의 범주안에 들어감. (102)

그런데 이 두가지가 사진을 특별한 기호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표적인 특성. 롤랑 바르트. (103) 이 페이지에 지표성 설명 잘 되어 있음.

이 이미지의 힘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유사함이 아니라 지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사회적 혹은 이론적으로든 간에 이미지에 대한 검토, 주석 혹은 비판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미지의 강력한 지표적인 측면에 우선적으로 의거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의 표상적이고 모방적이고 유사한 닮음의 특징에 의거한다. (106, 이거는 '사진의 지표성의 의미에 관한 고찰' 의 핵심 논의)


문제시되는 닮음

이미지의 도상과 지표적 측면에 이어 모방과 흔적에 연결된 상태에서 제기된 닮음 혹은 유사함을 보겠다.

지나친 닮음에 대한 위험은 표상의 대상과 표상된 것을 혼동하게 하는 것 이외에도 신의 창조 행위와 동격으로 간주하려는 데 있다.(107)

나르키소스의 예를 들어, 닮음 자체의 문제에 있어 흔적과 미메시스의 쟁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9)

곰브리치 닮음은 실제와 표상의 일치가 아니라, 시대와 인간들의 관계에 따라 변모하는 화가와 관객 사이의 기대치(109)

목판화는 어떤 특별한 도시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세 도시의 개념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 (112)

넬슨 굿맨 '한 오브제를 표상하기 위해 이미지는 상징이 되어야 하며, 오브제의 가치를 지녀야 하고 또 준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닮음의 정도는 준거가 되는데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115)

'이미지가 오브제와 닮았다고 하는 것은 오브제의 절대적인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각의 관습을 망각하는 것이며 우리가 문화적인 방식으로 표상을 해독하는 것처럼 문화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해독한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미지가 그 오브제와 닮았다고 하는 것은 이 닮음을 통해 이미지의 해석이 실제 오브제의 해석에 개입하는 코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와 오브제가 닮았다는 것은 이 두 인식이 문화적으로 코드화되어 있다는 것인데 세계 인식의 메커니즘과 이미지 인식의 메커니즘 사이에 닮음이 있는 것이지, 유사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이미지와 그 모델로 간주된 오브제 사이의 관계는 아니다.(118)

상징은 연속성(닮음, 도상)뿐만 아니라 인접성(지표)과도 단절되어 있으며 임의적인 기호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123)

지표에서 도상으로 도상에서 상징으로 진보하면서 표상이 점점 더 세심하게 분절되거나 분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표는 기호의 유아기. (123)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사진의 닮음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지표와 도상의 강한 연결을 언급하고 있다. (126)


제 3장 이미지와 기호작용

이미지는 다의적이다.
이미지에 내재하는 다의성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이미지 자체 혹은 그 언어적 맥락(광고의 언어학적 메시지, 학교 참고서의 주석)이나 도상적 맥락(다른 이미지들의 첨가)에 집중되어 있다. (132)

이미지는 시각적 텍스트이다. 에코 ' 이미지의 언어적 동등가는 단순히 단어가 아니라 적어도 묘사이거나, 아니면 발화체 또는 이따금 언술 전체이기도 하다.' (133)

이미지가 모호하다는 주장이 정당하다면, 한편으로 일정한 수준에서 이미지를 해독하는 것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 언어 행위의 의사단의성(다의성의 반대개념)과 비교해서 이미지의 특성을 구성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137)

이미지는 기호를 포함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기호는 무엇인가? 그리고 기호는 어떻게 배치되는가? 이러한 것이 이미지 기호학이 제기하는 문제이며, 예컨대 바르트가 광고 이미지에 의거하여 논지를 전개시켰던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미지는 기호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미지의 형태 속에서 이를 쉽사리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광고에서 의미 작용은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48)

잡지 사진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이렇고 저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고 저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는 것과 실제로 존재했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바르트의 용어로 사아에테에 해당한다. 이는 놀라움의 기능이 사진의 특이한 지시적인 측면 때문에 증거의 기능으로 이중화된다는 의미이다. 사진은 완전하게 현실의 흔적이다. 이를테면 지시 대상물이 접착되어 있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 사진은 실존의 증거와 감각의 증거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정보가 사건을 알리는 것에서 사건을 증거하는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러한 것이다. (244)

Joachim Schmid Photoworks, 1982-2007

Joachim Schmid Photoworks, 1982-2007 : [exhibition, the Tang Museum, Skidmore College, 3 February-20 April 2007]

Joachim Schmid and Photography:
The accidental artist 
(p. 11) 요하킴의 작품은 인간의 사진 문화의 기록으로서 예술 사진이나 'high journalism'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부여된 중심적인 역할에 대한 조용하고도 지속적인 회의를 보여준다.

(p. 11) 일반적인 사진 역사나 컬렉션의 가치에 반박하는 일 없이, 그는 그것들이 놓고 지나간, 남겨진 이미지들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

(p. 12) 최근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진 우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 여기서도 그의 관심은 특정 개별 천재나 마스터피스가 아니라 사진 매체 그 자체의 nature이다. 수백만 명의 손에 들린 수백만 개의 카메라가 수십억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p. 12) 요하킴의 작업은 시각 안류학으로, 사진 비평으로, 직접적인 사진 역사로 제시된다.

(p. 17) 요하킴이 일반 아마추어 사진들을 이용한 것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인데, 이 시기는 스냅샷, 사진 아카이브, 포토저널리즘, 예술 사진 그리고 문화에 있어서 사진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촉발되었 시기였다. Gerhard Richter의 Atlas 시리즈가 비슷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의 작업이 autobiographically and artistically 기능하는 것과 요하킴의 작업은 다르다. Atlas는 Richter 페인팅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고, 작가 작품에서의 사진적 이미지와 추상 사이의 constant tension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요하킴의 Archive는 사진의 사용과 그 자체의 사용에 관한 분류학적, 사회적, 풍자적으로 진단 한 것이었다.

(p. 18) 요하킴은 작은 구성요소와 제스쳐들이 모였을 때 쌓이는 감정적인 intensity와 시각적 스케일에 관심이 있었다. '길에서 주운 5장의 사진은 덜흥미롭다. 그런데 50장은 흥미롭다. 500장은 훨씬 재밌다. 양이 질을 향상시킨다.'
사회적 문제들을 없앤다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사회적 확신에서 오는 사회적 역사를 반영해서 보여준다.
독일의 사진과 관련하여 요하킴의 작품은 분류학적인 강기 시리즈 프로젝트의 전통을 반영, 확장, 도전한다. August Sander, Karl Blossfeldt, Bernd and Hilla, Thomas Struth, Thomas Ruff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 이런 작가들과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요하킴의 사진에 대한 공헌은 그런 주류 전통에 반대하는 정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Bilder von der Straße
(p. 21) 이 작업은 그 사진들 스스로 전적으로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시각적 artefacts로 그리고 인간의 기록물로 매혹적이라는 것. 1982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는 요하킴의 최장기 작업. 그 때부터 길에서 주운 모든 사진을, 사진을 찾은 시간 순으로 전시. 지금 900 패널이 넘는다(http://schmid.wordpress.com/works/1982-bilder-von-der-strase/)
그 사진들의 미적인 기준에 따라서 편집을 하지 않는다, 편향되지 않은(unbiased) 잃어버린 혹은 버려진 사진의 사회적 샘플을 보여주기 위해서. 지금은 그 양이 너무 많아져서 전체를 전시하기에는 어려워서 전시를 할 경우에는 전시 공간에 맞게 최소 100장 이상의 사진을 무작위로 선정을 해서 전시한다.


The Elusive Author:
Found photography, authorship and the work of Joachim Schmid

(p. 61) Each image is numbered and the location, month and year of the find are recorded.
비록 사진들은 다 거기에 있지만, 사진을 만든 사람은 부재한다. 겔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작가 자신은 이미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왜 그 사진들을 찍었고, 또 버려졌는지 알아내는 것은 우리 몫이다.((Bilder von der Straße
))

(p. 62) 다른 대표적 프로젝트는 1986~1999의 Archiv. Impartial approach가 바뀌어서 여기서는 어느 정도 선택이 개입함. 모든 사진을 다 포함하기에는 불가능. 엽서, 메거진, 중고사진 가게 그리고 사진을 구할 수 있는 어떤 곳에서든 구해서 유사성에 따라 선택하고 편집했다. Photographs with similar/identical motives, aesthetic features, etc.를 그룹화 해서 2~60장을 한 패널에 붙이고 또 그 패널들을 함께 전시. 총 합해서 700개 정도 패널.
Achive 이 자체로는 이미들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람자는 패널 앞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the trend for seafarers posing for holiday snaps alongside ships' lifebelts throughout the twentieth century; the apparently universal urge to record the stroking of horses' heads in fields; or the consistent inclusion of scantily clad girls lying amongst the waves on postcards of Paphos. ((Archiv))


Archiv
(p.71) 1986년에 시작해서 1999년 총 725 패널로 마무리. 각각의 패널은 2~60장의 이미지로 구성. 그것은 역사이고, 코맨트이고 일반적인 사진의 일상적 기이함에 대한 축하이다.
Archiv가 제공하는 시각적 기록에서 specific and private한 개인의 경험은 공유된 사진 습관으로써 함께 나타난다. 이 결과로 나타난 분류는 사진을 unique한 경험과 열정으로, 따라서 개인적 역사와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을 처음에는 강조하는 듯하다가 부인한다.
비록 이것이 코닥 순간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지만, Archiv는 과거의 일상과 일반적인 욕망에 대한 매혹적인 초상을 제공한다. Filled with sentiment and cliche, Archiv itself remains unsentimental, observing its subjects from a vantage point well above the photographic fray, analyzing, organizing, and occasionally snickering with olympian delight.

얼굴

벵자멩 주아노,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21 세기북스, 2011

'상상력(imagination)'과 '상상계(imaginaire)'는 프랑스어에서 개념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상상력은 이미지들을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이러한 개념은 상상력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사고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

상상계는 프랑스어나 영어에서 '상상적인, 가상의'라는 형용사로 표현되는데, 이 형용사는 기본적으로 오직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서양의 고전적 인식 체계인 정신/육체, 실재/이상의 이중적 이해 구조에 갇혀 있다.

레비스트로스나 뒤랑 같은 사상가들은 보다 복잡한 통합 개념을 주장하며, 상상계를 명사로 사용했다. 상상계가 상상력 같은 어떤 일종의 능력이나 과정과 다르다고 생각. 상상계는 단순히 이미지들이나 신화, 상징 등을 축적해놓은 정신적인 '이미지들의 창고'가 아니라, 논리와 합리성을 포함한 모든 정신 활동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범주', 다시 말해 이미지들을 조직화해 체계와 원형, 상징, 신화 등을 만들어내는 범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재 구조에 이미지들을 포함시키는 역동적인 과정인 상상계는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상상계는 상징화 과정의 기초를 이룬다. 사물이나 행동,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이 과정을 거치며, 따라서 우리의 모든 실재가 모두 이 상상계를 토대로 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계 연구는 일군의 인류학적 구조들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일군의 구조들이 전 인류와 역사에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같은 기본 색과 기법을 쓰지만 전혀 다른 작품을 그려내는 화가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상상계는 그만큼 다양하게 표현되며, 이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다채로워진다.

이런 형상과 그 현상을 이끌어낸 '상상계'를 연구해보면 어떤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것에 연루된 힘과 동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 집단의 꿈과 환상, 제도와 전통의 원천을 접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상상계는 일정 문화집단의 인식 체계 같은 것 같다. 어떤 사물에 상징을 부여할 때에도 어떤 바탕이 되는 생각 구조가 있을 텐데, 이런 것이 상상계.))

얼굴은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의 바탕이 되며,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또 수많은 제도와 유행, 사상 등에 그 형태를 부여하는 위대한 인간의 상징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을 '상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철학과 정신분석, 미학, 인류학 등의 관점을 통해서도 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 그 어떤 실재보다 '정신적인' 오브제가 바로 얼굴이다.

얼굴은 상상과 의미의 근원에 뿌리를 두는 특별한 '기호'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이 다른 그 어떤 상상계의 구성 요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과거에 있었던 신화, 전설, 역사적 사실이 어떤 상상계로 거듭나며 오늘의 우리를 이루고 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하여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아울러 세상을 보는 눈도 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제부터 얼굴은 겉모습의 얼굴이 아니라 상상계 속에서 무한히 빛날 수 있는 얼굴이고 그것은 곧 현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얼굴은 이 상상계에 속하는 요소이면서 물리적 현실로 이어지는 공간))


-----------------------------------p.14-----------------------------------

p. 38 얼굴은 눈, 코, 입, 귀, 머리의 집합체. 얼굴은 부분으로 나뉘어 생각되는 동시에, 어떤 하나의 상징을 넘어서는 일종의 통합 기호소 또는 상징의 집합체로 규정된다.

p. 141 얼굴은 내가 한 개인이 되는 장소다. 내 사회적 환경이 나에게 부여하는 역할과 표지가 얼굴에 새겨진다. 얼굴은 사회가 내게 씌우는 가면이자 내 개성이 담긴, 움직이는 육체적 성소다. 이 흥미로운 양면성은 모두 얼굴이 접점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나온다. 즉 나와 세계, 나와 다른 사람들, 심지어 나와 나 자신 간에 이루어지는 소통의 가변적이고 변화하는 도구로서의 측면을 말한다.

p. 142 사진과 비디오에서는 그 촬영 관점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그것들은 나를 외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회를 주지만, 사실은 확고한 각도에서 촬영한 것만을 보여줄 뿐, 내 얼굴이 남들에게 보이는 그 모든 복잡한 특징과 생기를 드러내지는 못한다.((앞서 머리말에서는 스티브 맥커리의 '아프간 소녀' 사진을 예로 들면서 얼굴 사진으로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p. 143 다른 신체부위는 옷으로 감출 수 있지만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노화가 새겨진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얼굴, 말 그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진실이다.

p.149 주요 감각의 무리로서의 얼굴은 본래 몸의 감각을 위한 부위다. 그리고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의 중심 접점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이 두 세계에 관여하는 이유다. p. 153 다윈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굴은 자연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 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은 뒤셴 드 불로뉴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계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얼굴 표정은 문화적인 산물이며 인간, 특히 동일한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생태학자들은 이 유전적, 자연적 접근법이 문화적 접근법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즉 분리 연구가 아니라 다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며 그 둘을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p.149 주요 감각의 무리로서의 얼굴은 본래 몸의 감각을 위한 부위다. 그리고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의 중심 접점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이 두 세계에 관여하는 이유다.

p. 153 다윈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굴은 자연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 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은 뒤셴 드 불로뉴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계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얼굴 표정은 문화적인 산물이며 인간, 특히 동일한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생태학자들은 이 유전적, 자연적 접근법이 문화적 접근법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즉 분리 연구가 아니라 다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며 그 둘을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p. 275 우리가 인간의 속성 뒤에 놓고자 하는 가치의 정의가 무엇이든,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다. 한 접점으로서 얼굴은 근본적으로 모호하고 복잡하다. 얼굴은 명백함의 영역, 그리고 신비의 영역이다. 인간 과학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상상에 있어서도 얼굴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중적인 속성 때문이다. 



((얼굴은 인간 내부의 자연적인 모습과 문화적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접점. 명백하면서 신비한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