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18 March 2013

존 발데사리 John Baldessari


John Baldessari (b. June 17, 1931, National City, California)

1949-53   B.A., San Diego State College. San Diego, CA.
1954-55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Berkeley, CA. (Art History)
1955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Los Angeles, CA.
1955-57   M.A., San Diego State College. San Diego, CA.
1957-59   Otis Art Institute. Los Angeles, CA.
               Chouinard Art Institute. Los Angeles, CA.


San Diego State College에서 master's degree를 받은 후 LA로 가 회화의 여러가지 주제와 스타일에 관해서 실험했다. 그 지역에 만연하던 스타일을 따르는 것을 뒤로하고 1959년 고향인 National City로 돌아온다.
1960년대 초반 JB는 주위 풍경들에 영감을 받아 이전에 캔버스에 그렸던 주제들을 상기시키는 장소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 사진들을 그림을 위한 소스로 이용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사진이기도 했다. 또 건물에 붙은 광고 쪼가리에서 찾은 글자들을 작품에 이용. 광고 일을 하던 친구가 버려진 포스터를 갖다주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JB는 그런 이미지 조각들을 추상 구성의 바탕으로 사용했다. 또 광고 스크랩 이미지를 돋보기로 확대해서 벤데이 점(Benday Dot) 패턴 그림을 만들기도 했다. 1965년의 이러한 작품들은 전통 회화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JB는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 계속 물음을 던졌다. 1967년 JB는 자동차를 타고 National City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운전을 하고 다른 한 손은 창밖으로 내밀어 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차를 세우고 그 장소의 이름을 적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구성이나 톤은 상관하지 않고 특수 코팅 된 캔버스에 그 흑백 이미지를 인쇄했다. 그리고 간판업자를 고용해서 사진 아래에 장소의 이름을 적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작품의 제목이었다.


Econ-O-Wash, 14th and Highland, National City, Calif., 1966–1968
Acrylic and photoemulsion on canvas; 59 x 45 in. (149.9 x 114.3 cm)
Courtesy the artist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Paris
© John Baldessari



작품에서 예술가 자신의 손을 제거하고, (가끔 사진 인화도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도 했다) 작품의 주제를 자신이 자란 동네의 일반적인 풍경으로 택함으로써 JB는 "미화시키는 일 없이 그리고 아무리 추하더라도 진실은 아름답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살았던 곳으로부터 작품을 만들 수있다"라고 여겼다.

동시에 그는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분 짓는 학계의 언어에 의문을 던지는 캔버스 회화 작품들을 만들었다. 예술가 교육 메뉴얼, 예술사 글, 사진책 등에서 취한 인용 문구를 자신의 사진과 짝지었는데, 이미지와 그 텍스트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었다. 몇몇 작품은 텍스트만으로 구성되기도 했는데 'Everything is Purged...'(1966-68)의 경우 캔버스에 'Everything is purged from this painting but art, no ideas have entered this work (이 그림에서 예술만을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Everything is Purged..., 1966-68. Acrylic on canvas, 68 x 56 inches. The Sonnabend Collection. 

그가 동시대 예술에 관해서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National City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LA, New York, Europe에 비해서는 비교적 변두리에 있음을 의미하였다. 1968년 Paul Brach가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 예술학부를 설립하면서 JB를 조교수로 임명하였다. 그 해 같은 학교에 교수로 있던 David Antin이 JB의 첫 번째  LA 전시를 주도했다. 이 때,  Text, Phototext 작품을 Molly Barnes 갤러리에 전시했다. 같은 날 옆 갤러리 Gallery 669에서 전시를 연 Joseph Kosuth는 'Nothing'의 자전 정의들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JB는 Joseph Kosuth뿐만 아니라 Robert Barry, Mel Bochner, Walter De Maria, Dan Graham, Douglas Huebler, Sol LeWitt, Lawrence Weiner 등의 Conceptual Artists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개념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동시에 그는 지형적으로 떨어져서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Commissioned Paintings' (1969)에서는 아마추어 화가들에게 자신이 생각해낸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JB는 친구 George Nicolaidis가 손가락으로 일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화가들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JB는 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 그림에 손가락이 어떻게 그려졌나 비교하면서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겠지요" JB는 그 시절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한 가지 이상의 답을 제시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선택이라는 주제는 이후 작품에도 나타난다. JB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물건을 선택하도록 한 다음 그것들을 촬영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JB가 자주 보여주는 특정한 병렬 배치의 모티베이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나는 비교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것 대신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만약 여러개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상적으로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즐거운. 또 누군가에게는 훨씬 많은 layer를 줄 수도 있는... 그래서 내 일은 Paradox로 가득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1969년 즈음 JB의 작업실은 팔리지 않은 그림들도 가득찼다. 그해 12월 그는 작업실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 그리고 1970년 회화 작업을 완벽히 중단하고 1967년 이전 작업들을 모두 태워(cremated)버렸다. "내가 작품을 보관하는지 어떤 사람이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왜냐하면 내게 흥미있는 것은 탐구(investigation)이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는 것."

1970년대에  JB는 계속해서 전통적인 예술 제작 분류에 대해 탐구했다. conceptual, minimal 같은 용어는 유용해보이면서 동시에 제약적이었다. "conceptual이라는 말은 첫째로 회화, 둘째로 조각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유용한 용어이다. 개념 미술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카테고리는 차치하고, JB의 작품은 기호학 이론에 영향을 받아 언어의 다양성을 탐구했다. (단어와 이미지가 서로를 어떻게 대신하는지). JB는 1971년 두 개의 전설적인 전시를 갖는데 둘 모두 언어와 이미지의 합일점(confluence)에 기반한 것이었다.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초대전을 제안했는데 거기까지 갈 만큼 비용이 제공되지 않았다. 대신 JB는 학교 학생들에게 갤러리 벽에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라고 반복적으로 적게 했다. JB역시 30분 간 같은 글귀를 적어서 비디오로 촬영했다. 비슷하게 'Police Drawing'은 구어적 정보가 시각적 정보로 바뀔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룬다. JB는 한 친구의 커뮤니티 컬리지 아트 클래스에 방문해서(알리지 않고) 10분 간 돌아다녔다. 후에 police artist(JB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가 와서  학생들에게 JB의 인상착의를 묻고 그것을 근거로 그림을 그렸다. JB는 그 스케치와 비슷한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John Baldessari
I Will Not Make Any More Boring Art. 1971. Lithograph. composition: 22 3/8 x 29 9/16" (56.8 x 75.1 cm); sheet: 22 7/16 x 30 1/16" (57 x 76.4 cm). John B. Turner Fund. © 2010 John Baldessari. 

1970년대에 JB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찾은 이미지(found image)가 재밌는 것은 이것들이 art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나는 사진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영화 스틸 이미지, 신문, 잡지 이미지는 넘쳐났다.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주제와 관련한 제목들을 붙여서 파일로 정리했다. "총(guns)과 키스(kisses)가 첫 번째 파일들이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들 파일도 갖고 있다-꼭 서부 관련이 아니더라도- 그냥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들. 이런 재료(material)은 은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뇌를 자극하도록." 이런 사진들이 어떻게 네러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이해하면서 JB는 필름 스틸 이미지를 점점 더 사용하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얼마나 심오하게 그런 연결이 가능한지 드러내면서. "I realized I was tapping into this collective unconscious, what people think about as a surrogate life.(나는 내가 이 집단 무의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대리 삶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JB는 이 found image의 시퀀스를 관련있는 것이나 이질적인 것으로 모아서 격자나, 일자, 혹은 자유롭게 배치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배치에는 항상 어떤 구조나 개념적인 바탕이 있었다. 'Blasted Allegories'(1978)에서 JB는 다양한 필터를 이용해서 TV 스크린을 직접 촬영한 광고 이미지를 배열했다. 각각의 사진에는 관련 단어가 할당되고, 알파벳 혹은 색깔 기준으로 정리되었다. 새로 배치된 그 이미지들은 단어와 함께 새로운 정형화된 문장을 형성했다. 콜라주와 몽타주 기술을 사용해서 JB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각적 체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그리뜨가 그랬듯, JB는 의미는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치(juxtapositions)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Blasted Allegories (Colorful Sentence):...Green/Threat
1978
Color photographs and pencil on board
30 3/4 x 40 inches


1980년대에 이르러 JB는 텍스트 없이 found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는, 1960년대 자신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텍스트는 이미 Cubists, Futurists, Dadaists, Pop artists 등에 의해 쓰이고 있었지만 그림의 주제로 우선시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텍스트가 예술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싸움에서 이겼다"라고 느꼈지만, 사진 이미지의 사회적 영향력(pervasiveness) 때문에 그것이 가진 중요한 의미를 꿰뚫는 시각으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에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일반적으로 20세기에 우리가 TV에서 보는 모든 영화,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실제로 거리를 걷고 식품점에 가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나는 그 두 세계를 뒤섞고(commingle) 싶다." 텍스트는 완전히 제거하고 오로지 사진의 배치에만 의지하는 것으로, JB는 이미지-텍스트가 만들어내던 네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단어 없이도 그러한 작품들이 의미 생산을 위해서 여전히 언어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때, JB의 구성은 그가 "정보를 나타내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활용했던 사각형 포맷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내부로 부터의 프레이밍(framing from within)"이라고 칭했듯 주제가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를 결정하도록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얼굴을 동그랗게 칠해서 가리는 테크닉을 사용했다. 점점 많아지던 사진 파일들 중의 하나는 "civic portraits"였는데, 그가 설명하기로 "은행 개업 때의 은행장이나 변호사 클럽에서 누군가 의사봉을 전달하는 그런 장면 사진들". JB는 그런 삶을 혐오했고,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식별가능한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이미지를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그와같은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에  파헤쳐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얼마 간의 실패 끝에 JB는 스튜디오에 있던 동그란 가격 스티커 (price stickers)로 얼굴을 가렸다. 그 이미지들은 즉시 힘을 잃어버렸다.(rendered powerless)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 사람들을 지워버린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모를겁니다.(there was such a flood of relief, you couldn't believe it felt so satisfying to obliterate theses people." 유명인사들이 무명으로 변했다. 얼굴 (이후에는 신체 일부)를 가리는 것으로 개인성을 없애고 특정 사람을 무명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렸다. 하얀 점은 이후에 컬러 점으로 대체되었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빨강은 위험, 녹색은 안전 등.

 
Tiger (Orange) and Trainer: With Three Figures (Red, Yellow, Blue), 2004
Three dimensional digital archival print with acrylic paint on Sintra, Dibond, and Gatorfoam panels
119 in x 147 in x 3 in
© 2004 John Baldessari

1990년대 중반  JB는 사진/텍스트 작품을 다시 시작했다. 1996년에 National City로 돌아와 30년 전 작품에 나왔던 장소들을 다시 촬영했다. 많은 장소들이 1960년대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변했고, 자신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그것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은 대비되는 요소들을 병렬배치(juxtaposing)하는 것에 대한 그의 계속되는 관심을 보여준다. 그의 예술은 반대되는 주제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합치는 것으로 삶의 복잡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Somewhere Between Almost Right and Not Quite (with Orange)'(2004)에서는 JB는 'betweeness'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B급 필름 스틸에 색을 덮어 칠해서 근본적으로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노랑과 빨강의 중간 색인 오렌지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 색으로 사용된다. 

몽타주 프로세스를 이용해서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것으로 JB는 다시 의미는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차용(appropriation)을 이용해서 맥락변화(contextual change)로 인해 일어나는 의미변화를 강조하는 JB의 작품은, 의미를 만들려는 인간의 충동을 그 주제로 취한다. "뭐, 내가 확신한다고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두 가지가 어떤 magnetic proximity로 함께 있을 때, 의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두 단어, 두 이미지, 두 물건, 그게 어떤 것이든. 그 의미에 대해서 일반성이나 동의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건 문화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것들이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를 매혹시킨다"


원문 텍스트: Not Just People Falling Off Horses by Tracey Bashkoff from John Baldessari: Somewhere Between Almost Right and Not Quite (With Orange), 2004, The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A Brief History of John Baldessari>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