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2 May 2016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

마음의 아이들

한스 모라벡

서문

수십억 년 동안 우리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서로간의 혹독하고 가열찬 경쟁을 벌인 결과로 마침내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존재로 진화했다. 그 결과 승자와 패자를 모두 정복할 너무나 위력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그 무기는 흔히 생각하는 수소폭탄이 아니다. 핵무기의 광범위한 사용은 오히려 교묘하게 계획되고 있으며, 단지 엄청난 흥밋거리를 간직한 종말을 지연시킬 뿐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핵무기에 의한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후기생물적'이나 심지어 '초자연적'이라는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 미래다. 그것은 인류가 자신의 문화적 변화에 의해 사라지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자손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세계다. 중간 단계로 보이는 다수의 예가 가능성만이 아니라 이미 발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궁극적인 귀결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만든 기계는 부모가 신생아를 보살피는 것과 같이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즉 '지능적'이란 단어를 쓸 만한 가치가 없는 단순한 피조물이다. 그러나 다음 세기 안에 기계는 우리가 우리의 후손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만큼 복잡한 존재가 될 것이고, 결국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초월할 정도까지 성숙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물려받은 자손인 기계는 더 큰 우주 내에서 거대하고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터벅터벅 느리게 진행되는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계의 노동으로부터 여가 시간을 획득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의해 부모 세대가 사라지고 자손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듯, 조만간 우리는 사라질 것이고 기계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에 관한 모든 것, 심지어 개별 인간 마음의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의 인공적인 자손에게 있으므로, 이렇게 운명의 성화를 넘겨준다고 해서 우리가 잃어버릴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변화는 약 1억 년 전 한 유전자 라인에서 우연히 동물이 특정한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체가 잉태될 때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대신에 살아가는 동안 먼저 태어난 개체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으로 대체하게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1,000만 년 전 우리의 영장류 조상들이 뼈, 나무 막대기, 돌로 만든 도구에 의존하기 시작했을 때 유전정보에 포함되었고, 100만 년 전 불을 이용하고 복잡한 언어를 개발하면서 가속화되었다. 약 10만 년 전 현생인류라는 종이 등장했을 때에 이르러서는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유전자가 부지불식 중에 구성한 문화적 진화가 거역할 수 없는 관성으로 굴러가게 된 것이다.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 유전자 풀 내에서의 변화는 인간 문화에서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진보와 비교할 때 대수롭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농업혁명을 겪었고, 다음에는 경제적 기반을 위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권력을 지닌 대규모 관료제 정부의 확립, 문자 언어의 발전, 그리고 지적인 관심사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계급의 발흥이 뒤따랐다. 지난 약 1,000년 간 가동 활자 인쇄movable type printing와 더불어 시작된 발명이 문화 정보의 유통과 진화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했다.

 200년 전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우리는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는데, 그 단계에서는 물건 들기와 나르기 같은 인간의 신체 기능에 대한 인공적인 대치물이 점점 더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것이 되고, 실제로 필수불가결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100년 전 실질적인 계산기의 발명과 더불어 우리는 처음으로 인간 마음의 작지만 성가신 작업을 하는 기능을 인공적으로 복제할 수 있었다. 기계 장치의 계산 능력은 그 이후 매 20년마다 1,000배씩 상승해왔다.

 육체적인 것이든 마음에 관한 것이든 어떤 본질적인 인간의 기능도 인공적인 대응물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때가 가까이 왔다. 아직은 육체나 마음의 세부에 있어서 인간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발전의 집합을 보여주는 전형이 바로 지능형 로봇, 즉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계다. 그런 기계는 우리의 도움 없이도, 그리고 우리를 발생시킨 유전자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구조물과 점점 더 빨라지는 자기 개선을 통해 우리의 문화적 진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대 우리 DNA는 진화에 있어서 새로운 경쟁자에게 졌다는 사실과 더 이상 자기의 역할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초창기 지구에서의 생명 발생에 관해 연구해온 화학자 A. G. 케언스스미스 Alexander Graham Cairns-Smith는 이런 내부 쿠데타를 유전적 인계라고 부른다. 그는 유전적 인계가 이전에도 최소한 한 번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단서들 Seven Clues to the Origin of Life>에서 케언스스미스는 생명의 전구물질은 단순한 결정성장의 과정으로 복제되는 진흙의 미세한 결정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결정은 결정이 성장함에 따라 증가하는 규칙적인 원자 배열의 변위 패턴에 의해 결정된다. 만일 결정이 나누어져야 한다면 각각의 조각은 그 패턴의 복제물을 물려받을 수 있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작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미세한 결함은 진흙의 물리적, 화학적 속성에 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변위 패턴을 공유하는 결정은 조밀한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패턴을 갖는 것은 스펀지 덩어리로 결집될 수 있다. 미네랄을 함유한 물은 전자의 주위를 우회하지만 다른 물질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성장에 필요한 기초 물질을 제공하면서 서서히 흘러들어간다. 그 패턴은 또한 환경 내의 다른 분자의 화학반응을 조절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성장에 영향을 준다. 진흙은 강력한 화학적 촉매다. 작은 결정의 총 표면적은 엄청나고, 문제의 결정과 분자가 지닌 외적 형태에 따라 특정한 배열에 들어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통된 결정은 다윈설에 따른 진화의 본질적 요소-생식, 유전, 변이, 생식 성공에서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케언스스미스의 이론에 따르면 특정 종류의 진흙이 격렬한 다윈적 경쟁을 하는 중에 최초의 유전적 인계가 시작되었고, 그 내용은 긴 탄소 분자 안에 유전적 정보로 암호화된 것이다. 그런 고분자는 쉽게 교란되는 변위 패턴보다 더 안정적이고, 그것을 이용하는 유기체는 점점 더 큰 범위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을 복제할 수 있었다. 비록 처음에는 기존의 결정에 내재된 화학적 기제에 철저히 의존했지만, 이 탄소 분자가 복제에서 더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결정의 성질에 덜 의존하게 되었다. 그것은 진화의 여정에서 우리가 생명이라 부르는 유기체의 복잡하고 독립적인 체계만 남긴 채 단순한 결정이라는 발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를 남겼다.

 수십억 년이 지난 오늘날, 정보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방법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거의 전적으로 유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규정되는 유기체로부터 진화했다. 게다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 외부에서-신경계, 도서관, 가장 최근에는 컴퓨터에서- 생성되고 저장되는 문화 정보의 방대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말뭉치에 의존한다. 우리 문화는 여전히 생명체인 인간에게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지만, 문화의 주된 산물인 기계가 문화의 유지와 계속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조만간 기계는 아무런 도움 없이 자신의 유지, 생식, 개선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유식해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새로운 유전적 인계가 완성된다. 그때가 되면 우리 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이 지니는 한계에서 벗어나 현재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아닌, 더 유능한 지능형 기계가 전달의 책임을 맡는 국면으로 진화할 것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유전자,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은 이 새로운 제국에서 급속히 축소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에서 기인한 우리의 마음 또한 그러한 쿠데타에 의해 사라질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혁명은 인간의 문화를 해방시키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효과적으로 해방시킬 것이다. 현재의 조건에서 우리는 마음의 발달 단계에 따라 생긴 다수의 생물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적으로는 생물학적 존재이고 부분적으로는 문화적인 존재인 불안정한 혼혈아다. 우리의 마음과 유전자는 살아 있는 동안 다수의 공통적인 목표를 공유할 수 있지만, 아이디어를 획득하고 발전시키고 전파하는 데 사용되는 시간과 에너지와 우리의 몸을 유지하고 (십대를 자녀로 둔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새 세대를 길러내는 데 쓰이는 노력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마음과 육체 사이의 불안한 휴전은 삶이 끝남과 함께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아 우리 자손과 친척 안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알아차리기 미묘한 변화이긴 하지만, 규칙적으로 이렇게 유전자 층을 새롭게 되섞는 실험이 유전자의 진화적인 관심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다른 절반 즉 마음에 있어서는 파괴적이다. 어렵게 획득한 우리 마음의 너무도 많은 측면이 우리와 더불어 그냥 사라질 뿐이다.

 인간의 사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내세에 대한 믿음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신비적이거나 종교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다. 컴퓨터는 심지어 가장 열렬한 기계론자에게도 '내세로의 전이'에 있어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다. 진행 중인 계산-컴퓨터의 사고 과정이라 온당하게 부를 수 있는 것-은 도중에 멈추어도 기계의 메모리로부터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읽혀진다면 물리적으로 다른 컴퓨터로 옮겨져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인간 마음이 (기술적으로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겠지만)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람의 누뇌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마음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으로부터 구출된 다음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정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좌우되는 성향에서부터 자기확신적 엄격함까지 자연스러운 인간의 정신은 삶이 진행되면서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불멸로 유지하기에 좋은 재료가 아니다. 오래 살아남기 위한 적합성을 부단히 키우기 위해 인간의 마음은 재프로그램되어야 한다. 덧없고 유한한 유기체 적응은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외부적 과정에 맡길 수 있는 반면, 마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든, 완전히 인공적인 창조물로 시작하든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어린 시절과 유사하여 일정한 기간의 단계를 넘어갈 때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춤으로써 주기적인 회춘을 경험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그 과정은 변화하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더하고 빼고, 온갖 종류의 조합으로 구성 요소를 테스트하면서, 연속적으로 마음과 육체의 내용을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테스트는 중요한 핵심이다. 그것은 진화를 조종한다. 만일 한 개체가 이 테스트에서 지나치게 나쁜 결정을 많이 내린다면, 그것은 기존의 다윈적 방식에서처럼 완전히 실패해 사라질 것이다.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리의 세계가 우리에 앞섰던 생명이 없는 화학의 세계와 다른 것처럼, 자기 증진적인 생각하는 기계에 의해 주도되는 후기생물적 세계는 우리 세계와 아주 다를 것이다. 자유로운 마음의 자손으로 이루어진 개체군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귀결이 어떠할지 어느 정도 상상해보고자 한다.


*마음의 아이들, 한스 모라벡, 김영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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