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10 December 2014

New Aesthetic

New Aesthetic


제임스 브라이들 James Bridle이 제안한 개념으로 아직 뚜렷이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실에 대한 비평적 관점 정도로 이해하자.

“New Aesthetic은 예술 운동도 아니고 행해 질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이것은 멀리있는 그렇지만 겹쳐있는 우리의 현실들에 존재하는 차이과 간극을 인식하는 잡다한 네트워크의 인공물(artifact)이다.”

제임스 브라이들 자신이 속해 있는 디자인 그룹의 블로그 포스트에 2011년 처음 이 용어를 썼다. 직접적인 정의 없이 일련의 이미지로 이 개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설명했다.

제임스 브라이들의 텀블러 The New Aesthetic은 이것의 연장으로, 글로 직접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만들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아카이빙하는 것을 통해 이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2012년 한 컨퍼런스(SXSW)에서 있었던, James Bridle을 주축으로 한 패널 토론(The New Aesthetic: Seeing Like Digital Devices) 이후 이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이 이 패널 토론을 참관했고 이에 관한 글, “An Essay on the New Aesthetic”을 와이어드에 발표하면서, 이 개념에 대한 더 폭넓은 관심이 일어났다.

브루스 스털링의 글을 요약하면.
  • New Aesthetic은 큐비즘처럼 리얼리티를 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 예술 운동이다. 발견의 단계가 아니라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 현대 네크워크 문화의 토산물로서 런던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디지털에서 태어났다.
  • 사실을 이야기한다. 우리를 둘러싼, 우리가 현재 만들고 있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 이해가 가능하다. 당신 엄마도 이해할 수 있다.
  • 깊이가 있다. 인터렉션 디자인, 컴퓨테이셔널 미학, 감시, 군사 기술 등과 관련된다.
  • 현대적이다. 지금, 여기를 위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 새로운 새대의 것이다. 아날로그의 유산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 조잡하다. 결국은 정리가 필요하다.
  •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다. [SXSW 패널 토론에서 기계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토론의 제목이 The New Aesthetic: Seeing Like Digital Devices었다.]
  • 기계적인 동화에 미적 문제를 숨기는 것은 잘못됐다.
  • 기계가 “생각”, “기억", “시각" 등을 가진다는 은유는 기만이다. [브루스 스털링 자신은 인공지능 AI을 믿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의 시각 이라던지 하는 표현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 컴퓨터는 제대로된 미적 판단을 할 수 없다. 인식적, 지각적, 지적, 도덕적 면에서 부족하다.
  • 은유는 주의를 끌기위한 형의상학적 책략이다.
  • 진정한 New Aesthetic은 기계가 생산한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다루는 노력일 것이다.
  • 진정한 New Aesthetic이 입자물리연구소 CERN에 있다고 가정하면 그는 왜 일부(전부가 아니라) 수학만 “아름다운가?”와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 지적으로 솔직한 New Aesthetic이라면 글리치(glitch) 이미지 사냥보다는, 더 큰 시각으로 비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더 친근한 태도를 가질 것이다. 엔지니어들의 생산품에 대한 탐욕적 태도는 옳지않다.
  • 하드웨어가 우리의 삶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심오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 기계가 생산한 이미지에 가치를 주는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의 상상에 가치를 두던 것과 같다. 이것은 멋지고, 기이하고, 전복적이고 도발적이지만 빈곤하다.
  • 현대의 미를 해킹하는 대신 구축해야 한다.

브루스 스털링은 이 새로운 개념을 환영하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개념 정의에 대해 제임스 브라이들과 다른 의견도 피력하고, New Aesthetic의 방향까지 제시한다. 


개념이 모호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브루스 스털링처럼 저마다의 해석과 의견을 내놓았다. 제임스 브라이들은 2013년 글, “The New Aesthetic and its Politics”에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제임스 브라이들의 글을 요약하면.
  • 내 드론 작업이 드론 기계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기술적, 공간적, 법적, 정치적 시스템에 관한 것이듯, New Aesthetic 역시 아카이빙한 이미지나 인용 등에서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과 분리할 수 없고 그것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
  • New Aesthetic에서 “Aesthetic”은 “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처럼 보인다" 정도를 의미.
  • New Aesthetic은 성명서, 에세이, 책 등과 같은 공식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것이 다루고 있는 네트워크 자체-텀블러, 블로그, 유투브 비디오, 트윗 등-를 통해 네트워크에 관해 비평을 하는 것.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것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
  • 아카이빙된 New Aesthetic 이미지들은 이를 생산하는 기저의 시스템,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드러낸다.
  • 예를들어, 위성 이미지는 맵핑의 속성에 관한 것이다. 관점과 힘의 관계,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가진 특권, 이를 생산하는 기술을 독점적으로 가진 회사 등에 관한 이슈.
  • New Aesthetic은 아름다움이나 표면적 텍스쳐와는 관련이 없다. 이것은 네트워크된 기술의 정치와 정치화에 관한 것이다.
  • New Aesthetic은 연결들(connections)의 심오한 응집성과 다양성 그리고 네트워그 자체의 영향에 관한 것이다.
  • New Aesthetic에 대한 얕은 코맨트는 예술에 있어서 기술적인 이해도(technological literacy)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컴퓨테이션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비평가나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4년 현재 여전히 이 개념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논쟁을 통해, 새로운 흐름에 대한 여러 관점들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추가 참고자료:


Saturday, 6 December 2014

기계와 감정 Machines and The Emotions

기계와 감정 Machines and The Emotions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기계가 감정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감정이 기계를 파괴할 것인가. 이 질문은 새뮤얼 버틀러가 에레혼(Erewhon)에서 오래전에 제시한 바 있는데, 기계 왕국이 확장됨에 따라 이것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언뜻보면, 기계와 감정 사이에 왜 대립 관계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보통의 아이들은 기계를 좋아한다. 큰 것일 수록, 더 센 것일수록 더 좋아한다. 우수한 예술적 전통을 가진 나라-일본처럼-들은 서양의 기계를 접하자마자 이에 사로잡혔고 가능한 빨리 이를 흉내내려고 안달이다. 교육을 받고 여행경험이 있는 아시아인이라면 '동양의 지혜'라던가 동양 문명의 전통적 가치 같은 칭찬을 듣는 것을 못 견딘다. 장난감 자동차 대신 장난감 인형을 갖고 놀라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장난감보다는 실제 자동차를 더 선호한다. 그것이 자신을 치고 지나갈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기계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서구인 역시 그와 같은 즐거움을 느꼈다. 소수의 시인과  심미가를 제외하고. 19세기의 세계는 기계 진보 때문에 이전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여겨졌다. 피콕은 기계 시대 초기 '증기 지성 사회'를 비웃었다. 문학가였던 그에게 있어 문명은 그리스와 라틴 작가들이 대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당시를 지배하던 경향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루소 신봉자들의 자연으로 회기, 호반 시인의 중세 주의, 윌리엄 모리스의 News From Nowhere(항상 6월이고 모두가 건초를 만드는 나라). 이 모두가 기계에 대해 순전히 감성적이고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태도를 대변한다. 새뮤얼 버틀러는 기계에 대해 지적으로 비감성적인 경우를 파악한 첫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것은 지적 유희 이상의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깊은 확신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당시 가장 기계화된 나라의 사람들은 에레혼의 그것과 비슷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말해서 그 관점은 산업적 방식에 대항하는 반대자들의 태도에서 잠재적 혹은 외연적으로 나타났다.

기계는 아름다웠기 때문에 숭배되었고 힘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가치있게 여겨졌다. 그리고 기계는 흉물스러웠기 때문에 증오 받았고, 노예를 만들어내기에 혐오 받았다. 이 중에 어떤 태도가 '맞고' 어떤 것이 '틀렸다'라고 가정하지는 말자. 소인국의 사람들이 걸리버에 관련하여 이러한 질문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사람이 머리를 가지는 것은 옳고 다리를 가지는 것은 나쁘다라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일테니까. 기계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정령과 같다. 주인에게는 아름답고 유익하지만, 적에게는 흉측하고 고약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그 어느 것도그렇게 단순한 상태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기계의 주인은, 이것은 사실이다, 그것과 떨어져서 산다. 기계의 소음을 듣거나 찌꺼기 더미를 보거나 유독한 연기를 맡을 일이 없는 먼 곳에. 만약 주인이 이를 봤다면, 그것은 기계가 사용되기 전일 것이다. 그는 먼지나 열의 문제를 겪지 않은 채로 이것의 힘이나 섬세한 정확도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가 기계와 실제로 함께 살며 작동시키는 사람의 관점에서 기계를 봐야하는 상황에 처하면 준비된 답이 있다. 기계의 작동 덕에 그 사람들이 그들의 증조할아버지에 비해 더 많은(종종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증조할아버지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할 것임이 틀림없다는 점을 덧붙인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그 가정이란 물질적인 소유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두 개의 방과 두 개의 침대, 두 개의 빵덩어리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방, 하나의 침대, 하나의 빵을 가진 사람보다 두 배 행복한 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행복은 수입에 비례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항상 진심어린 것은 아닌 채, 종교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생각에 대해 도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설교로 인해 수입이 늘어나면 기뻐한다. 내가 도전하고자하는 것은 도덕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학 그리고 삶에 대한 관찰의 관점으로부터 온다. 만약 행복이 수입에 비례한다면, 기계에 대해서 반박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전체 질문을 검토해볼 수 있다. 사람은 육체적인 니즈가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 니즈가 만족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족되면 이로부터 분리된 감정이 사람이 행복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된다. 모던 산업 사회에는 육체적 니즈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은 많은 남자, 여자, 아이들이 있다. 그들에 관련해서는, 행복에 대한 최초의 조건이 수입의 증가라는 것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에 속하고, 그들 모두에게 삶의 최소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엄청나게 더 많이 가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가진사람들.

왜 우리는, 사실 우리 대부분은, 수입을 늘리려고 하는 것일까? 첫 눈에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물질적 상품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게 우월하게 보이려는 목적이다. 남자가 더 상류 지역의 큰 집으로 이사할 때에는 '더 나은' 사람들이 그의 부인을 방문하고, 이전의 빈곤한 친구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아들을 좋은 학교나 비싼 대학으로 보낼 때에는, 사회적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비싼 학비에 대해 스스로를 위로한다. 모든 대도시에는, 유럽이든 아메리카든, 어떤 지역의 집들은 다른 지역의 똑같은 집에 비해서 단지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비싸다. 우리 열정의 가장 강력한 것중 하나는 존경(respect)받고 감탄(admire)받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존경과 감탄은 부유해보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것이 사람들이 부자가되고 싶어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들이 돈으로 주고 산 실제 물건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백만장자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고전 대가들의 그림을 구매했다고 하자. 그가 그 그림들으로 부터 얻는 유일한 기쁨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비싼지 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더 직접적인 기쁨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허영에서 오는 만족감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많은 사회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귀족 시대에는, 탄생에 대해 존경받았다. 파리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술적이거나 문학적 탁월함에 대해 존경받는다. 독일의 대학에서는, 배우는 것에 대해 실제로 존경 받는다. 인도에서는 성인이, 중국에서는 현인이 존경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사회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분석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사례에서 큰 비율의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한 돈에는 무관심하지만 그들의 환경에서 존경을 얻는 것의 이점에 대해서는 욕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은 부에대한 지금의 욕망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지 않고 다른 사회적 기관들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만약 법적으로 우리 모두가 동일한 수입을 가진다면, 우리는 이웃들에 비해 더 나아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고 물질 소유에 대한 지금의 갈망은 멈출 것이다. 나아가 이 갈망은 경쟁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경쟁자들을 따돌렸을 때만 행복을 가져 올 것이고 상관적으로 그 경쟁자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일반적인 부의 증가는 아무런 경쟁적 이점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어떠한 경쟁적 행복도 가져오지 않는다. 물론 구입한 물건의 실질적인 즐거움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본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부를 욕망하게 만드는 데 아주 작은 역할만 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경쟁적인 한, 일반적이든 특정적이든 부의 증가에서 오는 전체로서 인간 행복의 증가는 없다.

그러므로 기계가 행복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려면, 절대적 빈곤을 막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가져오는 물질적 풍요의 향상은 중요시될 수 없다. 그러나 기계가 그처럼 사용되어야 할 어떤 내재적인 이유도 없다. 인구 변동이 없는 곳에서는 기계 없이도 빈곤을 막을 수 있다. 프랑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영국, 전쟁이전 독일에 비해 훨씬 적은 기계가 있지만 빈곤은 훨씬 적다. 반대로, 기계가 많은 곳이라도 빈곤이 클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백년 전 영국의 산업 지대와 현대의 일본을 예로 들 수 있다. 빈곤을 막는 것은 기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에 달려있다-인구 밀도와 정치적 상황. 빈곤을 막는 것 외에는 부의 증가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한편, 기계는 인간 행복의 중요한 조건 두 가지 즉, 자발성과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계는 그들 자체의 속도가 있고 자신의 요구사항이 있다. 비싼 기계 시설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작동하도록 유지시켜야 한다. 감정의 관점에서 기계의 큰 문제는 그것의 규칙성이다. 반대로 기계의 관점에서 감정의 문제는 그것의 불규칙성이다. 스스로 '심각하다'라고 여기는 사람을 기계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은 그에게 기계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믿을 수 있고, 시간을 엄수하고, 정확하고 등등. '불규칙한' 삶은 나쁜 삶의 동의어가 되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관점에 대항하는 것-내 생각에는 순전히 지적인 관점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점점 기계화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에 대한 건전한 공포에 영감을 받은-이었다.

실제 삶에 있어서는-사고와는 반대로-, 기계에 노예화되는 것에 대항하는 우리의 본능의 반란은 지금까지 가장 불행한 방향을 택했다. 전쟁에 대한 충동은 인간이 사회적 삶을 택한 이후로 계속 존재했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격렬함이나 독성은 없었다. 18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는 수많은 전쟁을 했고 세계에 대한 헤게모니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방을 좋아했고 존중했다. 포로가 된 장교는 상대방의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고 저녁 파티에서 손님으로 대접받았다. 1665년 우리와 네덜런드의 전쟁 초기에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 그곳의 네덜런드인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영국)은 그 이야기가 틀렸을 것이라고 우리 자신을 설득시켰고 그를 벌주었으며 네덜런드의 반대입장을 출판했다. Later war에서는 그에게 기사 작위를 주고 그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감옥에 넣었을 것이다. 지금 전쟁의 더 큰 흉포함은 기계 탓이며 이는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첫째로, 기계는 더 큰 군대를 가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둘째, 값싼 출판을 가능케했다.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열정에 어필하는 것으로 번성한다. 셋째, 이것이 우리와 관련한 점인데, 인간 본성의 자발적인 면으로 기저에서 작동하는 무질서(the anarchic)를 차단하여 전쟁에 대한 생각이 가능한 안도를 제공하는 것으로 어필하는 모호한 불만족을 만들어낸다. Late war와 같은 대변동의 책임을 정치인들의 책략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않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러한 설명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러시아가 대충 싸우고 평화 유지를 위해 혁명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국, 독일, 미국(1917년)의 경우 어떤 정부도 전쟁에 대한 요구에 맞설 수 없었다. 이러한 것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본능적인 이유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로서는 전쟁같은 본능의 지금과 같은 증가는 규칙성, 단조로움, 그리고 현대 삶에 길들여짐이 야기하는 불만족(대부분 무의식적)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상황을 기계를 없애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기계와 연관된 현재의 악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단조로움에 휴식을 제공하고, 그 동안 고도의 모험을 장려하는 것이다. 알파인 등정에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욕망하는 것을 멈출 것이다. 가장 능력있고 활발하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중 하나는, 내가 이것을 알게된 것은 행운인데, 늘 여름을 알프스의 가장 위험한 정상을 오르는 데 보낸다. 만약 모든 남자 노동자가 일년 중 한 달을 비행기 조종을 배우거나, 사하라에 사파이어를 찾으러가거나 즉각적인 개인적 계획과 관련한 위험하고 신나는 어떤 일에 참여 할 수 있다면 전쟁에 대한 대중적 사랑은 여자에게 제한되고 없어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계층을 평화롭게 만드는 어떠한 방법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과학적 심리학이 노력한다면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기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지만 우리의 본능은 바꾸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거기에 부적응이 존재한다. 감정과 본능에 대한 모든 심리학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정신분석학이 등장했지만 아직 시작 단계이다. 정신분석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행동에 있어서 사람이 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것(ends)을 추구할 것이고 그러한 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매우 비합리적인 믿음을 알지 못하는 채로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허지만 정통 정신분석은 엄청나게 많고 사람에 따라 다른 무의식적 목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 이러한 관점에서 곧 이해되고 평균적 인간 본성이 밝혀질 것을 희망한다.

도덕적 자아-제어와 위험 행동에 대한 외부적 금지는 우리의 무질서적(anarchic) 본능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이 부적절한 이유는 이러한 본능이 중세 전설의 악마만큼 수 많은 방법으로 위장할 수 있고 이러한 위장의 일부는 종교적인 모습이기까지하다.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본능의 니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만족시킬 가장 덜 해악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발성은 기계에 의해서 가장 크게 좌절된 것이기 때문에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회이다. 기회는 개인의 계획을 위한 것으로 남겨져야만 한다. 큰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지만 전쟁으로 치르는 것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 본성의 이해는 인간 삶을 진정으로 향상시키는 근간이 되어야만 한다. 과학은 물질적 세계의 법칙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왔다. 그렇지만 우리가 별과 전자에 대해 아는 것에 비해서 우리 자신의 법칙에 대한 이해는 훨씬 적다. 과학이 인간 본성을 이해하게 될 때, 기계와 물리 과학은 실패했지만, 그것은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Machines and The Emotions을 번역하였다.

요약
기계가 인간의 본성중 하나인 자발성, 무질서 등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에. 인간은 불만족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무질서에 대한 결핍을 전쟁으로 대신했다. 기계가 가져온 삶의 변화로 기인한 인간의 부적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삶의 규칙성, 단조로움을 없애야 한다.

Monday, 3 November 2014

Veillance and Reciprocal Transparency

Veillance and Reciprocal Transparency: Surveillance versus Sousveillance, AR Glass, Lifeglogging, and Wearable Computing

by Steve Mann




웨어러블 카메라 기기들의 등장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글.

Surveillance(권력에 의한 감시)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더 확대되고 있다.
Sousveillance(개인에 의한 감시)가 등장할 것이다. 웨어러블 카메라 기기의 등장으로.

surveillance카메라는 범죄를 잠재적으로 밀어낼 뿐 근본적 해결책이 안된다.
surveillance 카메라를 악용한 범죄도 나타난다. 영상을 목적에 따라 없애고 편집하는 등.

sousveillance가 처방이 될 수 있다. 이전에는 보안관은 사람들이 뭘 하는지 감시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보안관이 뭘 하는지 볼 수 있었다.
surveillance와 sousveillance가 동시에 허락되는 것이 평등하다.

surveillance가 허락되는 곳에서는 sousveillance도 허락되어야 한다.
영상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다. 저작권은 배포와 관련한 것이지 획득과는 관계없다.
웨어러블 카메라 기기는 인간의 감각 능력을 보조하게 될 것이다. 이는 보편적 need이다. 이를 제지하는 것은 인권과 관련있다.

surveillance와 sousveillance가 공존할 때 세상은 더 균형잡힐 것이다.


원문:
http://wearcam.org/veillance/part1.pdf


Thursday, 2 January 2014

인터넷의 역사 Internet History

INTERNET HISTORY

*2013년 www.coursera.org에서 제공된 Charles Seveance의 강의 'Internet History'를 요약 정리.

Dawn of Electronic Computing
Pre-Internet Communication
Research Networks - 1960s ~1970s
The First "Internet" - mid 1980s
The Web Makes it Easy - early 1990s
Ubiquity of the Internet - 1996~


1. 전자 컴퓨팅의 등장 Dawn of Electronic Computing
1.1. 앨런 튜링과 블레츨리 파크 Alan Turing and Bletchley Park
-블레츨리 파크: 영국이 세계 2차 대전 동안 독일의 암호 해독을 위해 만든 시설 
--2차대전은 세계 전역에 걸친 전쟁이었기에 무선 통신은 필수였다. 그런데 무선 통신은 쉽게 가로챌 수 있었기 때문에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것이 필요했고, 반대 진영에서는 그것을 해독해야 했다.

-최대 10,000명이 일했음
--수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현재 학제간 연구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BOMBE: Mechanical Computer
--튜링이 디자인. 기계식으로 독일의 암호 생성기계 에니그마를 해독.

-콜로서스 Colossus: Electronic Computer
--이 후 독일이 훨씬 복잡한 암호 기계를 만들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진공관을 사용한 전자 컴퓨터인 콜로서스가 등장. 콜로서스는 영국의 우체국에서 일하던 Tommy Flowers가 고안.


1.2 Post-War Computer and Communication 
전쟁 후 블레츨리 파크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MIT, Harvard 등 학교로 흩어졌다. 이 사람들은 이미 전자를 이용해서 컴퓨팅을 하는 것의 가능성을 알고있었다. 전쟁용 대신 일반적 목적의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



2. 최초의 인터넷-NSFNet The First Internet - NSFNet
2.1 History Through Supercomputing
1940년대: Manchester Baby, Ferranti Mar I, Harvard Mark I, US Army ENIAC 등 전자 컴퓨터.

1950년대: 전쟁 후 과학자, 수학자 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음. 많은 투자가 이루어짐.

1960년대: 컴퓨터 제작에서 컴퓨터 어플리케이션 개발로 옮겨가기 시작. 사무실의 터미널을 통해 전화선 네트워크로 중앙 컴퓨터에 접속해서 컴퓨팅. 컴퓨터는 매우 크고 비쌌기 때문에 학교에 한 대 정도밖에 없었으므로. (ex. Michigan Terminal System 지금의 인터넷이라기 보다는 원격 컨트롤하고 비슷한 개념으로 보임. 다만 로컬에는 컴퓨터가 없고 터미널이 존재.) 장거리 전화 접속으로 멀리 있는 컴퓨터에도 접속 가능했음. 

1970년대: Dial-Up Access가 널리 사용됨. 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갈 필요없이 사무실에서 접속해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유용했음.
Lease Line을 이용해서 항상 연결된 채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비용이 매우 높았다. 구리선이 이용되었는데 거리에 따라서 비용이 책정되었음. 따라서 그 선 사이의 네트워크에 많은 학교가 참여한다면 비용을 나눌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Store and Forward Networking. 세 개의 컴퓨터 A-B-C가 차례로 연결되어있다고 가정하고 데이터를 A에서 C로 보내는 경우에. A에서 데이터를 B로 보내고 B에서 다시 C로 보내게 되는데, 모든 데이터를 차례로 하나하나 넘겨야했기 때문에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큰 데이터가 하나 넘어가는 동안에는 뒤에 수많은 데이터가 기다려야 했다.
보통 이메일에 이용됐고 미국 끝에서 끝으로 보내는데 6시간에서 이틀 걸렸다.

같은 시기 1960~1980년대
ARPANET이 네트워크를 연구했다.
(보통 핵전쟁의 위험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교수는 방어목적보다는 컴퓨터의 접근성을 높이고 더 유용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더 컸다고 본다. )
이들은 Packet Switching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Store and Forward Networking과 다른 점은 각각의 데이터를 packet으로 나누어서 보냈다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여러 데이터를 나눠서 동시에 보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트래픽 컨트롤을 위한 컴퓨터 '라우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잘게나누고 나눈 데이터에 표시 lable를 해서 넘기고 또 받은 데이터를 재조립하는 '게이트웨이'가 필요. 컴퓨터-게이트웨이-라우터(다수)-게이트웨이-컴퓨터. 
여기에는 패킷을 어떻게 나누어서 효율적으로 보낼지, 얽히지 않고, 가 관건이된다. 이 네트워크에는 60개 정도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는가?

이 시기에 연구자들은(군대에서 뿐만아니라) 슈퍼컴퓨터를 필요로 했다. 이들은 가격이 수백만달러에 달했는데 이를 지원하던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모든 학교에 슈퍼컴퓨터를 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몇 개 컴퓨터를 제공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사용하게 할 생각을 했다.

2.2 Larry Smarr - NCSA
1970s 슈퍼컴퓨터는 천문학과 날씨에 많이 이용되었다. 반정도는 탄도 계산에 이용. 당시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Larry Smarr 자신은 당시 하버드 대학에 연구원으로 가면서 사름들에게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연구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전후 1960년대에 대학에서 널리 슈퍼컴퓨터를 이용했었는데 1970년대 베트남전쟁 이후 달라졌다. 정부에서는 슈퍼컴퓨터 사용을 전쟁을 위해서만 허락했다. Larry는 연구에 슈퍼컴퓨터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5개 대학에 슈퍼컴퓨터가 설치되었는데 컴퓨터를 사용하러 그 곳에 직접 가야했다. 네트워크를 만드려고 했는데 텔레콤 기업에서는 이것은 개인적 부분이라고 막았다. 그래서 단지 5개 센터만 연결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2.3
1985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슈퍼컴퓨터를 센터를 지원하고 각 센터를 국가적 네트워크인 NSFNet를 연결. ARPANET이 만든 TCP/IP를 이용. 최초 목적은 대학 연구.

미시건 대학도 슈퍼 컴퓨터에 대한 펀드를 지원했는데 이게 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IBM, 미시건 주, Merit Network, MCI와 함께. 1988-1995 동안 작동.

1989 ~1990년 경, 인터넷 서비스 기업은 "dial-up internet"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기 시작.

3. 웹이 인터넷을 편리하게 만들다. The Web Makes it Easy to Use
3.1 Getting to the Web

3.2 Robert Cailliau - Co-Inventor of the Web
웹의 최초 목적은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편집할 수 있게, 고에너지 물리학 출판물 쉐어.(웹 공동 개발자 Robert Caillou의 설명)
1994년 이후가 돼서야 웹이 아카데믹 외의 사람들에게 접근가능해짐.

3.3 The Web Becomes Content
인터넷은 인프라스트럭쳐였고, 웹이 인터넷에 유저 인터페이스와 URL을 제공해 준 것.
웹은 CERN의 팀 버너스 리와 Robert Cailliau에 의해서 발명
CERN이 브라우저와 서버를 개발.

3.4 Paul Kunz - The First Web Server in America
미국의 최초 웹 서버는 Stanford Linear Accelerator.
고에너지 물리학 데이터베이스 호스팅.

3.5 Building Mosaic
1990s 초 웹 발명
1993 미국에서 성장
1994-5 모든 곳에서 서앙
1990s 중반 가정의 케이블 모뎀이 시작

NCSA가 최초의 컨슈머 웹 브라우저 Mosaic 만듦.

3.6 Joseph Hardin-NCSA Mosaic
3.7 Reflecting on Mosaic
Mosaic -> Netscape -> Mozilla -> Firefox

4. 상업화와 서장 Commercialization and Growth
4.1 The Year of the Web
1994년 웹의 해
Netscape founded
WWW conference
W3C founded
Windows 95
이 때부터 웹에 돈이 투입되기 시작.

Netscape, JavaScript and FireFox

4.2 Brendan Eich - Inventor of JavaScript
4.3 Mitchell Baker - The Mozilla Foundation

4.4 Assume the Web
넷스케이프는 웹 브라우저, 웹 서버, 웹 프로토콜을 사유화 하려고 함. 웹 브라우저를 $50-$100에 팔았다.
W3C, 팀 버너스 리가 디렉터. MIT. 웹의 상업화를 막고, 표준을 만들기 위함. MS, IBM 등이 가입.

4.5 Jeff Bezos - Founder of Amazon
1994년에 웹 사용량이 매년 2300% 증가하는 것을 보고 착안.
첫 상품으로 책을 선택했는데 책이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엄청나게 많은 상품이 있기 때문. 3백만가지. (음악이 두 번째). 많은 아이템이 있으니 실제 세계에서 불가능한 스토어를 웹에서 만들 수 있음. 

4.6 현대 인터넷 The Modern Internet
1990s 후반 광케이블이 미국에 설치
고속 인터넷이 저렴하고 일반적

5. 인터넷과 패킷 Internets and Packets
5.1 Introduction: The Link Layer
A에서 B로 데이터가 이동할 때는, 그 사이의 네트워크를 거쳐서 간다.
그 사이에 문제없이 데이터를 보내는 데는 많은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Layered Network Model을 만들어서 각 문제를 분리해서 처리.
Application Layer: Web, E-mail, File Transfer
Transport Layer (TCP): Reliable Connections
Internetwork Layer (IP): Simple, Unreliable
Link Layer(Ethernet, Wifi): Physical Connections

5.3 The InterNetwork (IP)

6. Transport Control Protocol (TCP)
6.1 The Domain Name System
IP address: network-friendly
DNS: user-friendly
6.2 Transport Layer(TCP)
TCP/IP에서 먼저 IP는 출발과 도착 주소를 가지는 헤더를 참조해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목적지에 전달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잘못 전달되거나 파손될 수도 있고, 보내진 순서대로 데이터를 전송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TCP이다. 즉 IP가 데이터 패킷을 분실하거나 파손하면 TCP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리고 데이터를 알맞게 재전송하는 임무를 갖는다.

7.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Application Protocols
7.1 Application Layer
Port: IP주소 하부의 어플리케이션별 세부 루트. mail은 25, 웹브라우저는 110 등.

Protocol: 각 어플리케이션이 데이터를 주고 받는 방식. 웹브라우저는 http 프로토콜 사용.

Tuesday, 19 November 2013

인간과 기계의 얼굴 인식 Human and machine recognition of faces: a survey

Chellappa, R., Wilson, C.L., Sirohey, S. (1995) Human and machine recognition of faces: a survey, Proceedings of the IEEE , Volume: 83, Issue: 5, Publication Year: 1995 , Page(s): 705 - 741

상단 논문 번역 및 요약


I. Introduction
FRT(face recognition technology)는 이미지 프로세싱, 패턴 인식, 컴퓨터 비전, 신경 회로망 등의 영역에 걸친 분야이다. 상업적, 법집행 용도로 널리 이용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얼굴을 인식하는지, 지난 25년간 공학적으로 어떤 이슈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일반적인 문제 상황은, 주어진 이미지나 비디오에서 데이터베이스의 얼굴을 사용해서 특정 사람을 식별하는 것. 얼굴 인식에는 장면에서 얼굴을 분리(segmentation), 얼굴에서 특징점을 뽑아내고(feature extraction), 식별을하고(identification), 매칭(matching)을해야 한다.


지난 20여 년간 정신물리학자, 신경과학자, 공학자 등은 인간의 얼굴 인식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정신물리학자와 신경과학자는 얼굴의 유일성, 얼굴을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인식하는지, 얼굴 표정 분석과 인식에 활용, 아기의 얼굴 인식, 얼굴 기억을 위한 기관, 뒤집힌 얼굴 인식의 어려움, 얼굴 인식을 위한 "할머니" 뉴런의 존재, 얼굴인식에서 우뇌의 역할, 얼굴인식불능증 등에 의한 얼굴인식 장애. 몇몇 결과는 얼굴 인식 기술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FRT에는 얼굴 feature의 속성을 사용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1980년대는 FRT 연구가 거의 없었다.
1990년대는 FRT 개발이 급격히 증가했다. 감시와 관련한 수요 증가, 실시간 하드웨어의 접근성 증가, 실시간 컴퓨테이션을 강조한 신경회로망 classifier의 재출현 등 때문.


II. Applications
--matching--
1. 신용카드, 면허증, 여권, 머그샷
2. 은행/상점 보안
3. 군중 감시
--similarity detection--
4. 전문가 Identification
5. 증인 얼굴 재구성
6. 전자 머그샷 책
7. 전자 라인업
--generating an image--
8. 자료로부터remains 얼굴 재구성
9. 노화 컴퓨팅


III. Psychophysics and Neurophysiological Issues Relevant To Face Recognition
일반적으로 인간은 얼굴 인식에 모든 감각을 다 사용한다. 맥락적 지식도 사용한다.(얼굴 위치가 대충 어디쯤 있어야 한다는 지식 등). 이 모든 전략을 다 모방할 수 있으면 좋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
그런데 인간은 기억하는 사람수에 한계가 있다. 컴퓨터의 장점은 수많은 얼굴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얼굴이 독립적 과정이냐?: 다른 것보다 얼굴이 기억하기 쉽다, 얼굴인식장애 있는 사람은 다른 장애는 없다, 아기는 얼굴 패턴을 더 선호한다
-얼굴 인식은 전체적 분석이냐 특징점 분석이냐?: 연구에서는 전체적 분석은 특징점 분석을 보완하는 것으로 나타남
-중요한 얼굴 부위는 어딘가?: 코는 덜 중요하다. 얼굴 상단이 더 중요하다. 예쁜사람, 못생긴사람, 보통사람 순으로 인식
-뇌의 역할: 우뇌가 얼굴인식 역할에 있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얼굴 표정: 얼굴 인식과 얼굴 표정 인식은 별개
-인종/성별의 역할: 자신의 인종을 더 잘 인식, 일본의 경우 여자 얼굴이 훨씬 다양. 백인 여자가 남자보다 다양하지만 차이는 미미.


IV. Face Recognition From Still Intensity and Range Images
A. Segmentation
이미지를 블러시킨 후 에지를 따서 머리를 추출하고 거기서 눈, 코, 입 위치 등 파악하는 등, 이 방법에서는 배경에서 에지를 분리하고 그 에지에 머리가 있는지 다양하게 평가하는 식. 템플릿이 주로 사용되는 듯.


B. Feature Extraction
아이겐페이스: 소스 얼굴들을 아이겐 벡터들로 바꾸면, 이 벡터들의 조합으로 그 소스 얼굴을 모두 구성할 수 있음. 핵심은 이것이 사람 얼굴을 재현한 방식. 벡터의 weight가 feature 역할.
이 외에 아이겐페이스, 템플릿 사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feature를 추출. (한 논문은 feature를 visual features, statistical pixel features, transform coefficient features and algebraic features로 나눈다고 정리)


C. Recognition
1) Earlier approach
초기에는 얼굴에 사람이 특징점을 표시. 그 특징점 비교해서 얼굴 인식.
이후 특징점을 자동으로 측정. 얼굴을 기하학적 수치로 환산. 눈 사이의 거리, 각도 등.
2) Statistical approach
eigenfaces이용. 데이터 얼굴을 벡터로 환산해 놓고, 인풋 얼굴 벡터를 데이터 벡터와 거리를 재는 것. 얼굴이미지와 비얼굴이미지 값은 많이 다르니 얼굴 검출에도 이용. 사이즈에 민감.
3) Neural Networks approach
각 얼굴을 neural network으로 만들어 놓고, 인풋 얼굴이 어디에 가까운지. 얼굴인식, 감정인식, 성별인식 등에 사용.


D. Range Images
깊이값 있는 영상 이용.


V. Face Recognition from Profiles
옆 모습으로 얼굴 판단. 옆 얼굴은 앞모습과 다른 정보가 있고 머그샷에는 옆얼굴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활용할수 있으면 좋다.


VI. Face Recognition From An Image Sequence
동영상 분석은 20여년 역사가 있는데 얼굴 인식 관련해서는 없다. 다음과 같은 기술은 얼굴인식에도 관련이 있다.
1) 비디오 시퀀스에서 오브제를 분리하는 것
2) 구조 추정-3D 구조를 파악하는 것
3) 얼굴 3D 모델-증거 얼굴 복원, 변장 얼굴 인식 등에 유용.
4) Nonrigid 오브제 움직임 분석-얼굴 표정 인식 등.


A. Segmentation
템플릿을 사용해서 머리 위치 파악, 프레임별 차이, Optical Flow 분석 등 활용.


VII. Applications
A. Commercial applications
B. Law Enforcement


VIII. Evaluation of a Face Recognition System
OCR, 지문 인식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 볼 수 있다.
많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샘플 추출도, 예상되는 인풋 얼굴에 맞게 통계적으로 해야 한다.


IX. Summary and Conclusions
-얼굴인식은 치안을 위해서 특히 중요하고. 지문을 대체하여 활용될 수도 있다.
-컴퓨터 얼굴인식이 꼭 인간의 얼굴인식 방법을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할 수 있다.
-얼굴 영역 추출은 얼굴 인식의 첫번째 단계인데, 큰 관심을 받지 않았다. 연구해야 한다.
-얼굴의 전체적, 부분적 특징이 모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동영상에서 얼굴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현재는 프레임차이를 사용해서 얼굴 위치 파악하고, 그 다음에 인식을 하는 테크닉 활용.
-현재 기술을 잘 평가하는 것이 이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



*Reflection
-이 때는 동영상 얼굴 검출/인식은 거의 안되고 있던 때 인것 같다.
-얼굴 검출 보다는 인식에 포커싱을 두었다. 이미 있는 정리된 데이터베이스와 인풋 데이터를 매칭하는 용도가 주를 이뤘기 때문인듯. 머그샷, 신분증 등은 얼굴만 추려져 있으니까.

Monday, 28 October 2013

인간의 인간적 활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인간의 인간적 활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노버트 위너



1. 사이버네틱스의 역사적 위치
기브스의 물리학은 뉴턴 물리학과 달리 모든 일이 정확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단일한 우주가 아니라 압도적인 확률로 벌어지는 세계를 제시했다. 기브스 이론 중에는 여기서 나가아 우주가 나이를 먹을수록 이 확률은 자연적 증가 경향을 보인다는 이론도 있다. 이 확률의 척도를 엔트로피라고 부르며, 엔트로피의 특징적인 경향은 증가하는 데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우주와 우주 내에 있는 모든 닫힌계에서는 자연적으로 그 특수성이 감퇴하거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며, 확률 최소의 상태에서 확률 최대의 상태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고, 구별과 형식이 존재하는 차별과 조직의 상태에서 같음과 카오스의 상태로 자연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엔트로피가 무질서의 단위라면, 메시지가 전달하는 정보는 질서의 단위이다. 메시지의 확률이 커질 수록 정보의 수는 적어진다. 기브스의 우주에서는 질서가 일어날 확률이 가장 낮고 카오스가 일어날 확률은 가장 높다. 그러나 전체 우주는 흩어져 가는 와중에 국지적으로 고립된 영역이 존재하는데, 생명은 이와 같은 고립 영역을 찾아 터전으로 삼는다.

우주는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국지적으로 왼쪽으로 가려는 영역이 있다.(예, 생명체)
엔트로피(낮음) -------------> 엔트로피(높음)
확률(낮음)       -------------> 확률(높음)
질서(높음)       -------------> 질서(낮음_무질서)
정보(높음)       -------------> 정보(낮음)

살아 있는 생물체의 물리적 기능과 새롭게 등장하는 일부 커뮤니케이션 기계의 작동은 피드백을 통해 엔트로피를 통제하려는 유사한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서로 대응한다.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속한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 설비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 설비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과 기계 사이, 기계와 인간 사이, 기계와 기계 사이의 메시지가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혼돈으로 향하지만, 생명체는 그 반대 방향을 향한다. 기계도 그렇다.)


2. 진보와 엔트로피
자연은 무질서로 향하는 통계적 경향,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지적이며 일시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계가 있는데 이것은 단지 생명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기계 또한 국지적이며 일시적으로 정보를 축적하는 데 기여한다.
생명을 흉내 낸 오토마타는 첫째, 일을 수행하기 위한 운동 기관(손, 발과 같은)이 있어야 한다. 둘째, 광전지나 온도계와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와 공명(피드백)해야 한다. 일반적인 반사 운동처럼 단순한 피드백도 있지만, 특정 동작은 물론 행동 방침 전체를 조절하는 데 과거의 경험을 사용하는 수준 높은 피드백(학습)도 있다. 이러한 모든 행동 형식들이나 특히 더 복잡한 행동의 경우, 피드백으로 돌아온 정보를 근거로 하여 기계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결정해 줄 중심 결정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 때 기계는 살아있는 유기체의 기억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해서 정보를 저장한다.(윌리엄 애슈비가 기계와 생명 유기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썼다. Design for a Brain)

점점 더 높이 더 나은 방향으로 자발적인 향상이 이루어진다고 본 라마르크와는 달리 다윈은 진화는 살아 있는 개체가 (a)여러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이며 (b)선조의 패턴을 따르는 경향을 보여 주는 현상으로 보았다. 지나치게 번성해서 발전하는 자연의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되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유기체들은 ‘자연 선택'의 과정을 통해 솎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지치기의 결과, 생명 형태 중 환경에 적응하는 잔여적 패턴만이 남는다. 다윈에 따르면 이러한 잔여적 패턴은 보편적인 목적성인 것처럼 보인다.
애슈비는 잔여적 패턴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학습 기계를 설명한다. 어느 정도 랜덤하고 우연한 구조를 지닌 기계는 평행 상태에 가까운 위치나 평행 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놓일 것이라 지적한다. 평행 상태에 가까운 패턴은 그 본성상 오랫동안 지속되는 반면, 평행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패턴은 아주 일시적으로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다윈이 설명했던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애슈비가 설명한 기계에서도 목적 없이 만들어진 계 안에서 목적성이 나타난다. 이는 무목적성 자체가 원래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최대 엔트로피라는 매우 사소한 목적이 가장 지속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잠정적으로 보면, 하나의 유기체 집단은 서로 다른 부분들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패턴에 함께 협력하는 활동 모드에서 좀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학습 과정을 통해 고유한 목적을 찾는다는 비목적성의 우연한 메커니즘에 대한 애슈비의 아이디어야말로, 오늘날까지 철학이 기여한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일 뿐 아니라 자동화 기계의 임무를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지극히 유용한 역할을 할 것이다. 기계에 목적을 주입할 수도 있고, 특정한 단점이나 고장을 피하도록 설계된 대다수의 기계들의 경우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목적을 찾게 될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고립계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을 비관적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전체로서의 우주를 어느 정도 중요한 것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국지적으로 감소하는 엔트로피의 섬을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섬 가운데 하나이며, 이러한 성질을 가진 여러 섬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렇게 되면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의 일반적인 차이를 통해 결국 우주 전체보다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질서가 증가하는 지역을 더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생명이 속할 수 있는 시간대는 제한적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지질학적 초기 시대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구가 또다시 생명체가 사라진 채 불타 버리거나 얼어 버린 행성이 되는 것도 상상 가능하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의 범위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들에게, 지구상에서 인간은 물론 모든 형태의 생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주는 행운의 사건이 한순간 급작스러운 재앙으로 결말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여,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일시적인 사건과 그보다 훨씬 더 일시적인 인간 존재라는 사건마저도, 그 덧없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긍정적 가치로 여길 수 있다.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굳건한 확신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미약한 신념이다.

(우주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 반대 방향이다. 이것은 국부적이고 일시적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미약한 신념으로.)


3. 고정성과 학습: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두 가지 패턴
이미 살펴봤듯이 어떤 기계들과 일부 생명 유기체, 특히 고등 생명 유기체는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행동 패턴을 수정하여 특정한 반엔트로피적인 목표를 달성한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고등 유기체의 경우에는 개체가 과거에 경험했던 환경에 따라 행동 패턴을 바꿀 수 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의 환경을 더욱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행동 패턴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개미와 같은 곤충은 대용량을 기억할 수 없고 변태라는 중간 격변기를 겪음으로써 성충 시기와 단절된 형태로 유충 시절을 보낸다는 사실을 볼 때 개미가 많은 학습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개미의 행동은 지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깝다. 곤충이 입고 성장해야 하는 물리적 죄수복은 그 행동 패턴을 규제하는 정신적 죄수복과 직접 관련 된다. 곤충의 역학적인 고정성이 곤충의 지적인 능력에 제한을 주는 반면, 인류의 역학적인 유동성은 거의 무한하다 할 수 있을 만큼 지적인 팽창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는 사실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적인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이버네틱스가 기대고 있는 관점은 기계나 유기체의 구조는 거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행성을 말해 주는 지표라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만일 인간 생리학을 그대로 복제한 기계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인류의 지적인 능력까지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피드백은 어떤 시스템의 과거의 실행 결과를 다시 그 시스템에 집어넣음으로써 그 시스템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만일 이러한 결과들이 단순히 그 시스템과 그 규정을 비판하는 수적인 데이터로만 사용된다면, 이는 제어 엔지니어들의 단순한 피드백이 된다. 그러나 만일 실행 결과로부터 되돌아 진행하는 정보가 실행의 일반적인 방법과 패턴을 변경할 수 있다면, 이는 학습이라고 부를 만한 과정이 된다.
시냅스의 작동 방식과 디지털 기계의 작동방식을 대응시킬 수 있다. 디지털 기계에는 테이핑(코드)이 있어서 수행해야 할 연속 작용을 결정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이 테이핑의 변화는 학습 과정에 상응한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인간의 뇌에서 이 테이핑과 유사한 것은 시냅스 문턱synaptic threshold의 결정이다.

(인간의 경험을 통한 학습은 피드백을 통해 기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4. 언어의 메커니즘과 역사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언어가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향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이 기계에 말하고, 기계가 인간에게 말하고, 기계가 기계에게 말하는 방식이 모두 가능하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언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있다.
첫 번째는 음성학적인 측면. 소리 그 자체에 관련.
두 번째는 의미론적 측면.
세 번째는 행동수준. 개인의 경험을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번역하는 것.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 침팬지조차 말을 학습하지 못한다. 이것은 언어의 음성학적 단계가 아니라 의미론적 단계와 관련된다. 침팬지는 귀에 들어온 소리를 번역해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결합하거나 복잡한 행동 양식으로 변환하는 신체 메커니즘을 타고나지 못했을 뿐이다. 인간은 부호화와 해독화에 대한 관심을 타고난 덕분에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며, 이는 그 어느 것보다 고유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는 관심인 것 같다.
인간은 물론이고 기계에서 의미론적으로 유의미한 정보란, 그 어떤 자연적, 인위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신 시스템의 실제 메커니즘을 관통하는 정보다.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론은 의미의 정도를 정의하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손실을 제어한다.

(언어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기계를 만들 때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확장시키는 것을 통해 기계도 이 능력을 학습할 수 있다.)


5. 메시지로서의 유기체
여기서는 공상의 요소를 다룬다. 이 장에서 사용할 은유는 유기체를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죽어 가는 세상에서 지금 여기 존재하는 하나의 섬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타락과 부패의 일반적인 흐름에 저항하는 과정을 일컬어 항상성이라 한다. 이것은 기계적인 자동 장치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과 같은 형태의 네거티브 피드백 메커니즘이다.
생명은 항상성에 의해 유지되는 패턴이다. 패턴은 메시지이고 따라서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 몸의 패턴 전체 혹은 기억력과 상호연결성을 가진 인간 두뇌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된다. 이 일이 가능하다면 가상의 수신 장치가 메시지를 적절히 재구성하여 우리의 몸과 정신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과정들을 계속해서 재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지속하는 데 필요한 원래의 상태는 항상성 과정에 의해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물리적인 이동보다 정보 소통이 더 중요하다. 인간의 말이 가 닿는 지점과 인간의 지각력이 미치는 지점까지 인간의 제어 능력과 신체적 존재가 확장된다. 메시지의 이동은 인간의 감각 기관을 확장시키고 인간의 행동 능력을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확장시키는 정도까지 나아갔다.
4장에서 물질적 이동과 메시지 이동 사이의 구별이 그 어떤 이론적인 의미에서도 영원하거나 연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 문제는 인간의 개체성이라는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몸의 개별성은 돌의 개별성이 아니라 불꽃의 개별성이다. 이러한 몸의 형태는 전송되거나 수정되거나 복제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짧은 거리에 걸쳐 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세포가 둘로 나뉠 때, 또는 우리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생득권을 운반하는 유전자 중 하나가 생식 세포의 감수 분열을 준비하기 위해 갈라질 때, 그 자체를 복제하려는 살아있는 조직의 패턴의 힘에 따라 조건화된 물질의 분리가 일어난다. 만일 그렇다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신을 보낼 때 사용할 수 있는 전송 양식과 인간 등의 살아 있는 유기체를 전송할 수 있는 가능성 사이에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절대적인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기차나 비행기 여행은 물론 전신을 통해서도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록 현실화되기에는 어려운 생각일지라도 근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자. 근대 사회의 교통의 중요성을 실험하려던 키플링의 생각은 인체의 수송보다는 인간이 가진 정보를 전달하는 편에 압도적인 중점을 둔다는 교통의 견지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유기체를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단순한 물리적 이동보다는 정보의 이동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인간의 제어 능력과 신체적 존재가 확장될 수 있다.)


6. 법률과 커뮤니케이션
법률은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 행태로서의 언어에 적용되는 윤리적 통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법률의 집행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법률의 일반적 목적, 즉 정의에 대한 개념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정의의 개념이 효율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제다.
법률은 다른 무엇보다도 법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입법가나 판사들은 법조문을 분명하고 모호함 없이 만들어 전문가들은 물론 당대의 보통 사람들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해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과거의 판례를 해석할 때는 법정이 이미 했던 말뿐아니라 법정이 앞으로 하게 될 말까지도 높은 확률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법률의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나 사이버네틱스의 문제, 즉 어떤 결정적인 상황에서 질서에 따라 반복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문제로 여길 수 있다.
소음이 인간 커뮤니케이션 혼란을 주는 요인으로 여겨지지만 그 피해가 의도적으로 악의적이지는 않다. 이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있어서는 사실이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 대화에서도 대부분 그러하다. 반면 경험적으로 볼 때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의 경우 가장 그렇지 못하다. 법률 시스템의 전체적인 특성은 충돌에 있다. 법률은 최소한 세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화이다. 예컨대 민사라면 원고, 피고, 그리고 판사와 배심원으로 구성된 법 시스템이 참여하는 대화이다. 이는 전적으로 폰 노이만식 게임이다.

(법률을 사이버네틱스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법률 시스템의 경우 폰 노이만식 게임을 닮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자연의 경향과는 다른 것이다. 4장에서 일반적 커뮤니케이션 담론의 대상은 자연 자체의 엔트로피 경향이지 어떤 의도를 가진 실제 적수는 아니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법률은 그 비일반적 커뮤니케이션의 예인것 같다.)


7. 커뮤니케이션, 비밀, 사회 정책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세계에서 정보의 운명이란 팔고 사는 어떤 물건이 되는 것이다.이러한 태도는 정보와 그와 관련한 개념들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다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허법: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과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구분된다. 후자에는 소유권이 인정안된다. 오늘날 등장하는 발명품들은 일반적으로 머리를 써서 만들어 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품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좋은 상품은 물건의 본질적인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손에서 손으로 전달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는 쉽게 보존할 수 없다.
국가의 군사적 과학적 노하우: 무기의 효능은 특정 시기에 정확히 그에 필적할 만한 다른 무기들이 있느냐 하는 점에 달렸다. 다음 위기에 대비해 무기를 저장하는 것은 무기 저장 과잉을 초래한다. 경제적 수준에서, 영국은 산업 혁명 초기 폭이 좁은 철도와 낡은 공장 유물탓에 현대적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정보는 저장보다는 처리 과정의 문제이다. 국가의 당면 요구들에 대처하기에 적당한 상태로 정보와 과학을 처리하는 국가가 최대의 안전 보장 국가가 될 것이며, 이러한 국가에서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그에 맞게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연속적인 과정 중 한 단계로서 정보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비밀, 메시지 교란, 허세 등의 기술은 모두 우리 측이 다른 측보다 커뮤니케이션의 힘과 기구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일에 관련된다. 제아무리 완벽한 과학적 기밀이라도 그 확산은 단지 시간문제일뿐이다. 이 게임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무장하는 것과 적을 무장시키는 것 사이에 구별이 없다.(우리의 무장에 관한 정보를 상대가 곧 알아채고 그 수준으로 무장을 할 것이므로) 따라서 가공할 만한 발견을 하나씩 할 때마다 우리가 또다시 새로운 발견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점점 더 증가한다. 그래서 결국은 이 땅의 모든 지적 잠재 능력이 건설적인 활용 가능성으로부터 유출되어 신구를 막론하고 경쟁에 필요한 수많은 요구에 투입될 것이다. 이러한 무기의 효과는 지구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서 결국은 뜨겁고 차가운 것 , 선하고 나쁜 것, 인간과 물질 사이의 모든 구분이 사라져 새로운 별의 하얗게 불타는 용광로가 될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외부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드는 영향에 참여하는 일이고 외부 세계에 대하여 행동하는 일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과도기 단계에 있을 뿐이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지식의 발전과 그 막힘없는 교류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적절한 지식을 적이 갖지 못하도록 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은 우리가 그러한 지식을 확보하는 일이다.

(정보는 저장하고 감추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지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8. 지식인과 과학자의 역할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온전함이 사회 복지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예술가와 작가와 과학자들은 거부할 수 없는 추진력에 이끌려 창작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그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직접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형식이 교육적인 내용에 우선하며 나날이 교육의 내용이 얄팍해지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아마도 이제는 커다란 추진력보다는 단순히 학위를 획득하여 문화적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궤적을 따라가기 위한 사회적 지위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단지 누군가가 커뮤니케이션의 전도사라는 사회적이고 지적인 지위를 얻기 위해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면, 그 메시지의 질적이고 커뮤니케이션적인 가치는 무거운 추처럼 급속히 추락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열린 채로 정보는 교환되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련의 행위는 특정 주체들이 정해놓은 방향이 아니라 개개인의 동력에 의해서 자유로운 길을 따라야 한다.)


9. 1차 산업 혁명과 2차 산업 혁명
산업혁명은 인간의 다른 기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인간과 동물을 동력원의 위치에서 물러서게 해 주었다. 오늘날 곡괭이질과 삽질을 하는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불도저가 지나간 다음에 뒤처리를 하는 것 정도이다.
더욱 완벽한 자동화 시대의 그림을 그려 보자. 미래의 자동차 공장의 조립 라인의 연속 작동은 현대적인 고속 컴퓨터가 제어할 것이다. 컴퓨터의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이것의 행동은 테이핑을 통해서 조정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기계가 생산 과정뿐 아니라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일상의 통계적 제어까지도 처리할 수 있다. 기계는 일반 노동력과 화이트 컬러 노동력을 가리지 않는다. 기계가 사용되는 곳에 누군가 판단을 대신할 기계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새로운 혁명은 양날의 검이다. 인류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인류를 파괴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산업 혁명이 노동력을 대신했다면 2차 산업혁명-지능적 기계를 통한- 판단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 커뮤니케이션 기계와 그 미래
앞서 설명한 공장 시스템과 관련 없는 자동화 기계 관련 문제들도 있다. 신체 기능이 손실되거나 약화된 인간에게 인공 기관을 보조하거나 대치하는 목적의 문제이다.
기계는 불구가 되었거나 감각 기관의 장애로 인해 손상된 부분을 보강할 뿐 아니라,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진 기관에 새로이 더 큰 힘을 더해 주어 잠재적으로 위험스러울 정도까지 사용될 수 있다. 이미 기계의 도움으로 시각적 패턴을 청각적 언어로 변환함으로써 일반 텍스트 내용을 시각 장애인에게 읽어 주는 기계를 만들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기계를 사용하여 시각 장애인에게 위험물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리고 청각을 완전히 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기계를 사용할 수도 있다.
기계들 사이의 행동을 관찰해서 이를 사회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기계 행동에 대한 새로운 과학의 시작이다.
학습 가능한 기계는 군사적 상황을 평가하고 어떤 특정한 시기에 필요한 최선의 움직임을 결정할 수도 있다.
우리 과학자들은 심지어 군인이나 정치가로서 우리의 지식을 발휘해야 할 때라 할지라도, 인간의 특성이 무엇이며 그 타고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노하우’ 보다 ‘노왓 know-what’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의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뿐 아니라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떻게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의 혁명이 가져올 가능성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목적을 바로 설정해야 한다.)


11. 언어, 혼동, 방해
4장에서 파리의 브누아 만델브로와 하버드의 야콥슨 교수의 언어의 현상들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다. 여기서는 그 두 연구자들의 철학적 바탕의 결과를 더 발전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은 혼동의 힘에 대항하여 발화자와 청취자가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 여겼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측은 혼동을 주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강구하고, 그러면 다시 발화자와 청취자는 그때까지의 방책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해 사용하는 식으로 계속되는 것이다. 이는 폰 노이만식 게임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은 속내를 알기 힘들지만, 비열하지는 않다.” 효율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이 정직한 신을 다루는 것이라는 가정을 고지식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고지식할 필요도 있으며, 정직한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학에서 신념이 필요하다는 나의 말은 순수한 인과의 세계와 확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순전히 객관적이고 개별적인 관측이 제아무리 많다 해도 확률이라는 것이 타당한 개념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논리학에서 귀납법은 귀납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베이컨의 논리학이기도 한 귀납 논리는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그에 입각하여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 신념의 궁극적인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 신의 솔직함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격언은 그 자체로 신념의 표명이라 말해 두어야겠다. 과학은 인간이 자유로이 신념을 가질 때에만 번성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신념은 신념이 아니며, 그러한 유사 신념에 의존하는 공동체는 건전하게 성장하는 과학의 결핍으로 마비되고, 궁극적으로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사이버네틱스는 우주의 자연적 엔트로피 증가 경향을 전제한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 그리고 기계는 피드백을 통한 학습 즉, 커뮤니케이션 작동을 통해 이와 반대방향으로 향한다는 것. 그런데 폰 노이만식 게임에서는 자연적 엔트로피 증가 경향과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혼란을 야기하는 현상이 있다. 메시지이론은 이 상황은 전제하지 않는다. 또한 확률적 방법이 타당하다는 것도 입증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은 정직하며, 순수한 확률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것이라는 신념이 과학에 필요하다.)

Monday, 1 July 2013

미디어아트 이론과 정의 Theories and definitions of media art

미디어아트와 문화 Media art and culture

'미디어아트 Media art'라는 용어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기술적, 미적, 사회적, 문화적, 법적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예술 프로젝트를 일컫는다. 1990년대 이후 뉴미디어는 인터넷, 웹, 모바일, 무선, GPS 등의 기술을 포함하게되었다. '미디어 문화 Media culture'는 이러한 점에서 뉴미디어를 활용한다.

미디어아트는 비디오, 컴퓨터, 모바일 기기, 인터넷, 소프트웨어, 코드, 컴퓨터 게임, GPS, 스트리밍, 사운드 생성 기기, 로보틱스 등과 같은 새로운 도구와 규범(standards)의 기술적이고 미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포함한다. 이런 프로젝트는 보통 기술적 한계, 지각의 스테레오타입 혹은 도구의 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제는, 공적 영역, 데이터의 접근성, 소프트웨어, 오픈 스펙트럼(open spectrum)*, 소셜 웹, 개인적 데이터와 아이덴티티 보호, 인간적 권리와 이와 관련한 사회적, 문화적, 법적, 정치적 이슈들이다.



미디어아트 이론과 정의 Theories and definitions of media art

Jean-François Lyotard: New materials (1979)
Lyotard는 1979년 책 La Condition Postmoderne에서 네러티브의 끝, 존재에 대한 인간 컨트롤의 끝, 인본주의적 전틍의 끝을 예견했다. 그는 1985년 전시 Les Immateriaux을 큐레이팅하여 새로운 물질 new materials(새로운 기술, 컴퓨터화 된 공간, 인터넷)의 존재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보이고자했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물질'은 새로운 물질이 아니고, 그 스스로 작동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인간만이 일하고, 말하고, 계획하고 기억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Peter Weibel: Digital Image (1984)
미래주의, 입체주의, 입체미래주의, 절대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은 미디어아트에 대한 개념적인 전신(precursor). 2차대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예술 형태인 액션 페인팅, 플럭서스, 해프닝, 팝아트, 옵아트, 퍼포먼스 등은 '해방된 liberated' 디지털 이미지를 위한 토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

Lev Manovich: New Media (2001)
The Language of New Media
뉴미디어는, 별도로 진행된 두 개의 역사적 궤도, 즉 계산 기술과 미디어 기술 발달의 궤도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는 모두 183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그 시초는 배비지(Charles Babbage, 1792~1871)의 자료 입출력, 기억, 계산 등을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계산기의 원형인 해석기관(analytic engine)과 다게르(Louis Jacques Mand Daguerre, 1787~1851)의 다게레오타입이라는 독자적인 사진 기술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현대적 의미의 디지털 컴퓨터가 개발되어 숫자로 된 자료에 대한 계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이와 평행적으로 우리는 사진 원판이나 필름, 레코더 같은 것에 이미지, 연속된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현대적 미디어 기술의 발전을 목격하게 된다.
이 두 역사적 과정의 종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모든 미디어를 컴퓨터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숫자화된 자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 동영상, 사운드, 형태, 공간 그리고 텍스트 등으로 구성된 뉴미디어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컴퓨터에 저장된 또 하나의 데이터가 된 것이다.

Stephen Wilson: Information Arts (2003)
사용한 기술에 따라서 작품을 80여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Wilson은 예술과 과학기술 연구를 비평적 이론과 통합해서 "연구로서의 예술 art as research"로 제안.

Oliver Grau: Virtual Art (2003)
Virtual Art
미디어 아티스트는 이미지 생산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미적 가능성, 지각의 새로운 방식, 미디어 혁명에서의 예술적 위치 등을 탐구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로서 인터렉션과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혁신적인 형태를 연구하고, 미디어 개발의 핵심 영역에서 기여한다.
이 책의 주 내용은 가상 이미지 공간 virtual image spaces라는 미적인 개념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서양 예술 역사의 다양한 단계에서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고, 단절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Armin Medosch: Media Art (2005)
기관(institutional)의 맥락에서 미디어아트를 설명한다.
미디어아트를 새로운 영역으로 나누는 것은 그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한 기관들의 시스템 때문이다. 이러한 기관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Ars Electronica와 같은 페스티벌과 ZKM과 같은 대형 기관이다. 또 하나는 네트워크화되고 비중심적인 작은 기관들이다. 대형 기관이 지역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을 겪는 반면, 작은 기관들은 얼마 안되는 자본으로 꾸려나가고 때로는 열정적인 참가자들과 함께 스스로 비용을 충당하기도 한다.

Rudolf Frieling and Dieter Daniels: Media Art (2005)
미디어 아트는 멀티미디어, 시간 기반 time-based, 혹은 과정 중심 process-oriented인 것이다.
1. 미디어 아트는 멀티미디어를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 기반, 과정적 그리고 인터렉티브한 부분이 이해될 수 있다.
2. 미디어 아트는 예술 역사, 미디어 과학, 미디어 기술이 결합된 특별한 이론을 필요로 한다.
3.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과 특별한 이론은 상호의존적이다.
4. 맥락 context는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 생산되고 제시될 수 있다.

Charlie Gere: Art and Realtime Systems (2006)
Art, Time and Technology
리얼타임 시스템의 시대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Mark Tribe and Reena Jana: New Media Art (2006)
New Media Art
디지털 아트, 컴퓨터 아트, 멀티미디어 아트, 인터렉티브 아트 등은 교차적으로 사용된다. 이 책에서는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사용하고, 그러한 도구와 관련한 문화, 정치, 미적 가능성을 다루는 프로젝트를 묘사하는 데 쓴다.
뉴미디어 아트를 두 가지 범주로 나눈다.
1. Art and Tecnology: 전자 예술, 로보틱 예술 등 기술을 사용하지만 미디어와는 관련이 없는 것.
2. Media: 비디오 아트, 실험 영화 등 미디어 기술과 관련 한 것 (1990년대 이후 '새롭다'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기술)
책에서는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1994년 이후에 만들어지고, 개념적인 깊이, 기술적 혁신, 사회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다룬다.

Timothy Druckrey (2007)
1. 모호한 단계 phase of ambiguity (1960~1980년대). 전자 예술, 컴퓨터 예술은 모호하고 특정한 포커스 없이 단지 재미의 일종이었다.
2. 확산 단계 proliferation period (1980후반 ~1980년대). 모두가 사용하고, 모두가 더 빨라진 시기.  뉴미디어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됨.
3. 일상 단계 phase of ubiquity. 미디어가 모든 문화 환경에 존재.



*오픈 스펙트럼: 파장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화 하자는 운동

아래의 원문을 번역/요약한 것
Media art and culture